Article at a Glance혁신의 시대다. 식품 회사가 반도체 소재를, 필름 회사가 화장품과 의약품을 선보였다. 제조 강국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아지노모토와 후지필름의 이야기다. ‘감칠맛’ 조미료로 세계를 석권한 아지노모토는 핵심 역량인 아미노산 기술로 반도체 필수재 ‘아지노모토 빌드업 필름(ABF)’을 개발하고 사업 영토를 확장했다. 컬러 필름 시장의 위축으로 위기를 맞았던 후지필름은 패러다임을 전환해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자신들이 보유한 12가지 핵심 기술을 식별하고 고객 관점의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화장품, 나아가 헬스케어라는 미래 성장 동력을 찾아냈다. ‘안경계의 유니클로’ 진스(JINS)는 700년간 정체했던 안경 시장에서 센서를 장착한 ‘웨어러블 안경’으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혁신 비결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핵심 원천 기술의 축적, 환경 변화에 대한 선제 대응, 외부와의 개방적 협력이다.
지금 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기술 발전과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수적이다. 제조 강국 일본의 기업들도 혁신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조미료 기술을 반도체 소재로 확장한 아지노모토, 안경 사업에 집중하며 혁신을 이뤄낸 안경 제조사 진스(JINS),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후지필름의 사례는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 혁신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조미료와 만두에서 반도체 소재까지, 아지노모토냉동 만두, 반도체 재료,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일본의 조미료 회사인 아지노모토(Ajinomoto)다. 아지노모토는 100여 년 전 세계 최초로 감칠맛 조미료를 상품화한 식품 제조업체다. 단맛과 신맛, 짠맛, 쓴맛에 이어 일본에서 탄생한 ‘감칠맛’은 이제 ‘우마미(UMAMI)’라는 용어로 세계에서 통용될 정도다.
아지노모토가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2021년 도쿄 올림픽이었다. 당시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선수들의 행동이 엄격하게 관리되며 외출이 제한됐다. 그런 가운데 선수촌 식당에서 제공된 풍성한 메뉴는 선수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많았던 것은 만두였다. ‘선수촌 내에서 금메달은 만두’라는 코멘트와 함께 선수들은 SNS에 만두를 먹는 모습을 올리기 바빴는데 이 만두가 아지노모토의 제품이었다.
그런데 만두에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이 아지노모토의 반도체 소재다. 아지노모토 빌드업 필름(ABF)이라는 이름의 반도체 소재는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 90%를 넘기며 독점에 가까운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ABF는 반도체 칩과 메인 기판 사이의 회로를 연결하는 절연 소재로 고성능 컴퓨터 프로세서(CPU)나 그래픽 처리 장치(GPU)와 같이 복잡한 고성능의 반도체 칩을 제조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다. 인텔, AMD, 엔비디아, ARM 등 오늘날 생산되는 대다수의 반도체 제품 회로에는 반드시 ABF가 들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식품 제조업체가 반도체 소재를 생산하게 됐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아지노모토 혁신의 비결은 무엇일까?
2021년 6월 기관투자가 및 애널리스트 대상 사업 설명회에서 아지노모토의 간부는 자사의 강점을 ‘실험실에서의 개발, 시제품 제작, 고객 평가를 짧은 주기로 반복해 제품화 속도를 높이는 노력, 즉 고속 개발’에 있다고 평가했다. 아지노모토는 고객의 요청을 받고 나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될 것이라 예측해 몇 가지 처방을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다가 고객의 요구가 왔을 때 인원을 투입해 단번에 개발하는 것이다.
ABF가 좋은 예다. 아지노모토는 아미노산 기술이라는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조미료 시장이 호황이던 1970년대부터 감칠맛의 조미료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중 일부가 전자산업의 수지 및 코팅제로 사용될 수 있는 우수한 재료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동시에 1990년대 고성능 개인용컴퓨터(PC) 시장이 확대되면서 반도체 칩과 메인 기판 사이의 회로를 연결하는 고성능 절연 소재의 필요성이 커졌다. 당시 절연 재료는 액체 잉크를 바르고 건조하는 방식으로 만들었지만 반도체가 진화하면서 복잡한 회로 기판을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아지노모토는 기술 혁신을 예측하고 자사의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 절연 재료를 개발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연구를 시작했다. 실제로 ABF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는 아미노산을 기반으로 한 수지 복합제이다. 이미 기술 개발이 이뤄져 있었기 때문에 한 CPU 회사가 아지노모토에 절연재 개발을 요구했을 때 신속하게 제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아지노모토의 시라가미 히로시(白神浩) 최고혁신책임자(CIO, Chief Innovation Officer)는 닛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품 개발 시에 많은 경우 ‘기업이 가진 기술을 사용해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의 사회적 과제 등을 역산해 어떤 해결책을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시장에 일어날 혁신을 예측하고 새롭게 예측한 가치사슬 속에서 아지노모토의 강점을 살린다”고 말했다.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에서 혁신 성공의 두 번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시라가미 CIO는 “구체적으로는 시장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혁신의 요소를 선점하고 파트너를 선정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언급했다. 혁신의 두 번째 비결은 거래처와의 연결 및 협업이다.아지노모토는 직접적인 고객인 기판 제조업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반도체 제조업체, 원자재 구매 업체, 기판 제조 공정에 관련된 약액 및 장치 제조업체 등 가치사슬에 관련된 회사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시라가미 CIO는 “ABF는 반도체 재료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ABF 본래의 성능이 나오지 않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반도체 전체의 성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서 “반도체 기판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새로운 개선책이 있을 경우 다른 기업과 협업해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우리의 강점”이라고 말한다. 생태계 내의 기업과 사람들 간 신뢰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아지노모토는 변화하는 환경에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예측한 후 관련 기술에 투자하고, 속도감 있게 제품을 만들며, 외부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조미료 회사를 넘어 고부가가치 소재 제조 기업으로 변신했다. 아지노모토의 2024년 매출은 1조4392억 엔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는데 조미료 사업의 매출 비중은 57.3%, 냉동식품 사업 18.9%, ABF가 포함된 헬스케어 사업은 22.9%를 차지했다. 특히 헬스케어 사업의 이익 기여도는 37.5%로 아지노모토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700년간 혁신이 없는 안경 산업의 혁신에 도전하다, 진스(JINS)진스(JINS)는 일본 안경업계의 유니클로 같은 존재다.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 안경을 만들어 판매하는 브랜드다. ‘아이웨어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철학 아래 진스는 안경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다양한 혁신에 도전해 왔다.
최근에는 머리 움직임으로 개인용컴퓨터(PC)를 조작할 수 있는 ‘진스 어시스트 (JINS ASSIST)’
1
를 출시해 주목받았다. 이 제품을 안경에 부착해 PC와 연결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손 사용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PC를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용자는 고개를 끄덕여 커서를 움직이고 머리를 움직여 마우스 커서를 이동시킬 수 있다.
진스의 또 다른 혁신적인 제품은 ‘진스 밈(JINS MEME)’이다. 안경은 시력 교정 도구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넘어선 제품이다. 안경 코 받침 부분에 내장된 센서들은 눈 깜빡임과 시선 방향, 신체 균형을 측정한다. 눈동자 움직임과 깜빡임을 감지하는 센서, 6축 가속도 및 동작 센서를 통해 신체 움직임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집중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집중의 깊이와 지속 시간을 시각화해 보여준다. 또한 집중력을 저해하는 요인을 분석하고 개선 훈련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장시간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볼 경우 ‘현재 집중력이 저하됐습니다. 허리 통증 예방을 위해 잠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세요’와 같은 맞춤형 조언을 제공한다.
안경뿐만이 아니다. 안경형 웨어러블 장치인 진스 밈을 개발하면서 획득한 집중력에 관한 데이터를 활용해 집중력 향상에 특화된 공유 오피스 ‘싱크 랩(Think Lab)’을 선보이는 등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안경을 만들던 회사가 어떻게 센서 기술을 통해 눈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집중력 관련 데이터까지 활용하게 된 것일까? 어떻게 이러한 독창적인 콘셉트를 개발하고 기술 혁신을 이뤄냈을까? 안경 산업은 700년간 별다른 혁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꾸준히 혁신을 만들어가는 진스는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고 기술을 개발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진스 혁신의 비밀은 ‘개방형 협업(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진스는 필요한 모든 전문 지식을 자체적으로 모두 보유할 수 없으며 혁신을 위해서는 외부와의 협업이 필수라는 점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진스의 다나카 히토시(田中仁) 최고경영자(CEO)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같은 고민에 대해 20~30년 동안 연구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는 “대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비전
2
을 흔들림 없이 갖고 있으면 협조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진스 밈의 개발 과정은 대표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이다. 다나카 CEO는 진스 밈의 개발 몇 년 전부터 ‘머리가 좋아지는 안경을 만들고 싶다’는 구상을 여러 연구자에게 제안했다. 그중 ‘두뇌 트레이닝’으로 유명한 도호쿠대 노화의학연구소의 가와시마(川島) 교수가 합류하면서 ‘치매의 전조 증상인 눈의 움직임과 신체 균형의 편중을 측정할 수 있는 안경’이라는 아이디어가 구체화됐다.
진스는 여기서 더 나아갔다. ‘눈과 머리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다면 치매의 징후를 발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뇌의 기능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발전시켰다. 눈 움직임 포착을 위해 시바우라공업대의 전기 신호 측정 전문가에게 협력을 요청했고, 신체 균형 분석을 위해 게이오대의 보행 데이터 분석팀과 스포츠 의학 연구 센터와 협업해 센서 기반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처럼 진스는 새로운 가설이 추가될 때마다 관련 전문가들과 협력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실현했다.
진스는 핵심 기술에 대한 구상은 잡혔지만 제품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스 밈의 계획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경쟁사에 추격 기회를 제공하는 등 위험 부담이 큰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한 이유에 대해 회사 측은 “우리는 이런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명확한 콘셉트를 공개함으로써 다양한 업종의 기업을 끌어들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진스가 이 계획을 발표한 이후 전자부품 업체 등에서도 기술을 제공하고 싶다는 제안이 잇따랐다.
진스는 애초에 상품 기획부터 판매까지 모든 것을 이끌고 담당하지만 모든 과정에서 사내외를 막론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지식을 빌려서 운영해왔다. 시력 교정용 안경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사업의 성장이 둔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경이 발명된 후 약 700년 동안 큰 혁신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시력 교정을 넘어서는 안경의 가치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진스는 이처럼 특정 연구 분야에 수년간 헌신해 온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그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혁신의 지름길이라는 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필름 시장이 사라지다, 후지필름의 부활후지필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자신의 핵심 역량을 파악하고 새로운 사업을 전개한 기업’.
1934년 창립한 후지필름은 1948년부터 컬러 필름을 생산하며 세계 최초로 고감도 컬러 필름을 개발해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필름 시장의 선두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컬러 필름 시장은 2000년을 정점으로 매년 20% 이상 급격히 축소됐고 2010년에는 매출이 ‘0’을 찍으며 사실상 시장이 사라졌다. 이는 후지필름이 구축해 온 필름 관련 밸류 체인과 비즈니스 모델이 모두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내부에서는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공포감이 팽배했다. 필름 시장의 쇠퇴를 예상하고 대비해왔지만 시장의 소멸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후지필름은 디스플레이 소재 사업으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액정 TV 시장의 부상으로 한국 제조사들의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후지필름이 내놓은 전략은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제품 판매 중심에서 서비스 판매 중심으로 전환하고 축적된 기술을 솔루션 기반으로 재정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재료’ ‘디바이스’처럼 하드웨어를 기준으로 나뉘어 있던 비즈니스 모델을 ‘이미징 기술’ ‘재료 사이언스’ 등 솔루션을 기준으로 개편했다. 예를 들어 필름에는 입자 형성, 나노 분산, 성막 기술 등이 집약돼 있고, 카메라에는 정밀 성형, 이미징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이 집약돼 있다. 후지필름은 이러한 기술들을 분해해 경쟁의 원천이 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12가지로 정리했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와 고객의 잠재적 니즈를 반영해 소재나 부품 단위가 아닌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후지필름은 이 과정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수였다고 강조한다. 특히 자사의 기술이 사회문제 해결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고객 및 파트너와의 대화가 필수적이라고 밝힌다. 이를 위해 후지필름은 ‘공통 언어화’라는 과정을 거친다.‘공통 언어화’는 후지필름이 가진 기술을 외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표현하고 ‘동사화’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광학 필름이나 렌즈를 제조하면서 쌓은 기술을 설명할 때 ‘빛을 제어한다’라는 동사로 표현하는 것이다.이렇게 쉬운 언어로 표현하자 ‘빛을 제어할 수 있다면 피부를 아름답게 보이게 할 수 있다. 화장품 베이스에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또한 필름 제조 과정에서 나노 분산 기술을 화장품 성분에 적용해 피부 흡수력이 뛰어난 스킨케어 크림, 피부 속까지 침투하는 자외선 차단 크림 등을 개발했다. 기술을 기반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화장품을 출시하자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화장품 사업은 후지필름의 사업 전환을 상징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내부적으로도 헬스케어 사업 확대를 위한 초석이 됐고 자사 기술을 활용한 성공적인 사업 다각화 사례로 자리 잡게 됐다.
또한 후지필름은 ‘니즈 탐색을 통한 제안형 영업’을 도입했다. 이는 제품 판매에서 서비스 판매로 전환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제품이 아닌 고객의 비즈니스 가치를 높이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업 담당자들은 고객과의 면담에서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역할극 및 실습 교육을 받는다. 고객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적절한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함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후지필름의 소재 사업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필름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고기능성 소재를 개발하고 디스플레이 소재, 반도체 재료, 터치패널 소재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회사는 여기에서 나아가 사진 필름 제조에서 쌓아온 ‘고정밀 화학 합성 기술’을 의약품 분야에 적용해 바이오 의약품과 저분자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재생의료 분야에도 진출해 세포 배양 기술 및 치료용 세포 제조 공정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는 사진 필름 기술에서 파생된 ‘고순도 소재’와 ‘정밀 가공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후지필름은 성공적인 사업 전환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크게 변화시켰다. 2000년 매출의 54%를 차지하던 이미징 사업은 현재 15%로 축소된 반면 헬스케어사업은 12%에서 32%로 비중이 높아졌다. 매출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4년 기준 매출은 2500억 엔으로 5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를 갱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과거 필름 사업에서 경쟁사였던 코닥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과 극명히 대조되는 행보다.
아지노모토와 진스, 후지필름. 세 기업은 모두 치열한 고민과 노력으로 변화에 적응하며 생존해왔다. 이들의 혁신 비결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핵심 기술 축적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원천기술이 없다면 어떠한 혁신도 불가능하다. 아지노모토와 후지필름은 시장 호황기에도 꾸준히 원천기술 연구개발에 매진했다.둘째, 급변하는 시장 환경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다. 환경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진스는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평범한 안경만을 만들어서는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안경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후지필름 또한 언젠가는 필름 시장이 사라질 것이라 예측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비록 시장의 쇠퇴가 생각보다 빨랐지만 준비 덕분에 지금의 후지필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마지막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혁신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스 밈 사업부의 이노우에(井上) 전 총괄 리더는 일본의 온라인 IT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성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사업 영역, 제품 혹은 서비스를 정하고 나서 물건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비전이나 세계관에 가까운 콘셉트를 설정하고 그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늘려가는 방식”이라고 전한다.
그의 말은 혁신의 본질을 전한다.
“혁신은 우리만 알 수 있거나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혁신을 원하는 기업은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에 동참할 협력자들을 모아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교훈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