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하반기, K팝 산업을 뒤흔드는 초대형 사건이 터졌습니다. 하이브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간의 경영권 분쟁, 그리고 뉴진스 멤버들의 전속계약 해지 선언이 그것이죠. 표면적으로는 한 기업 안에서 벌어진 갈등처럼 보였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사건은 단순한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K팝의 근본이 무너지는 순간, 그리고 K팝 전체 시스템이 변화의 문턱에 서 있다는 신호탄이었습니다.
K팝의 시작을 언제로 봐야하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보통 HOT의 데뷔연도인 1996년을 그 기점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K팝의 글로벌 붐은 사실 그 자체로 근본을 무너뜨리는 일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 H.O.T., 보아 등이 아시아권을 넘어 일본, 중국으로 진출할 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놀라움이 컸습니다. 2011년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콘서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JYJ를 보기 위해 코스프레한 채 줄을 서던 팬들, 그리고 “오모니임!”을 외치던 외국 팬들의 모습은 이미 ‘한국’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넘어선 K팝의 새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대를 들어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오르면서 K팝은 더 이상 아시아의 문화가 아닌 세계의 문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초연결 시대, 유튜브와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완전히 새로운 게임판 위에서 한국 음악이 세계 시장에서 주류로 진입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출전조차 하지 못하던 올림핌 마라톤에서 갑자기 금메달을 딴 것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는 변화하는 규칙과 무너지는 근본이 숨어 있습니다.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의 성공 이후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주식 상장을 추진하며 다양한 레이블을 인수했고 이 과정에서 ‘K팝’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던 다양한 음악들은 대동소이한 콘텐츠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직접 작사·작곡하던 세계관은 점차 상업적 요구에 따라 변했고 앨범 판매를 위한 과잉 포토카드 마케팅, 팬덤을 겨냥한 초과 소비 유도 같은 관행도 고착화됐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초기에 보여줬던 진정성과 직접성은 점점 흐려졌고, K팝 시스템은 점차 ‘생산’과 ‘소비’만을 목표로 하는 공장처럼 변해갔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