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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에게 요구되는 혁신 리더십

CFO, 미래를 사업화하는 혁신 역량 필요
소통 능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터’ 돼야

심규태,정리=백상경 | 413호 (2025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우리는 왜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혁신이라는 과제를 제기하는가. 재무는 혁신이나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실제로 스스로를 사업의 추진 주체가 아니라 지원자나 감시자 혹은 통제자 역할로 규정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IMF를 거치며 우리 기업들은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의 거대한 전환을 경험했고 CFO들은 이 과정에서 ‘혁신의 선도자’ 역할을 DNA에 새겼다. CFO는 근본적으로 재무뿐만 아니라 기획까지 총괄하는 최고위 책임자여야 한다. CEO와 한 몸이 돼 최상위 비전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전례 없는 새로운 성공의 길을 열 미래형 혁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실패를 곧 리스크로 여기며 혁신의 싹을 짓밟아선 안 된다. 기술혁신의 시대, CFO는 미래형 혁신 리더로서 새로운 혁신 이니셔티브를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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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는 혁신의 리더여야 하는가?

왜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혁신이라는 미션을 제기하는가? 쉬운 질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복잡하거나 어려운 질문도 아니다. 이유가 명확하다. 혁신 리더십과 변화에 대한 사업적 이니셔티브(Business initiative)가 CFO의 역할을 짚어보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질문을 추가해보자. CFO는 지금의 시장 변화와 경영 환경이 요구하는 리더의 책임과 역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또는 자신에게 주어진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혹시라도 과거에 비해 퇴화하고 있거나 본의 아니게 혁신의 싹을 자르거나 짓밟는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삼성전자가 2000년대 들어 명실상부하게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하던 십여 년간 경영지원총괄사장이자 CFO를 맡았던 최도석 전 부회장(당시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 사장)이 2006년, 삼성의 ‘뒷다리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뒷다리론은 ‘삼성의 경영부서나 관리부서가 항상 사업부서의 뒷다리를 잡는다’고 해서 생긴 말이었다. 사업부서로서 느낀 답답함이 오죽했으면 뒷다리론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을까 싶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이것이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삼성은 일을 잘한다는 평가가 자자했던 때니 이렇게 깐깐하게 관리하는 것이 경영부서나 관리부서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당시 최 전 부회장은 CFO의 핵심 역할 다섯 가지를 제시했는데 그중 첫 번째가 ‘CFO는 혁신의 선도자’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CFO의 역할은 그냥 재무담당 임원으로서 경리, 자금관리를 하거나, 투자, 예산관리를 하거나, 재무분석이나 성과관리를 하는 등등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1990년대 이전에나 통했던 옛 개념이자 역할이라는 게 최 전 부회장의 지적이었다.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고 이제 CFO 역할은 혁신의 선도자여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최 전 부회장은 “CFO는 과거 단순 재무담당 임원의 역할에서 벗어나 전략적인 관점에서 기획 및 재무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며 “가치 창조와 장기 이익 극대화라는 기업의 목표를 최고경영자(CEO)와 공유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의 서포터 역할에 머물렀던 CFO가 사실상 CEO의 파트너, 즉 동반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수행하던 과거 업무는 담당 임원과 부서장에게 상당 부분 일임하고 리스크 관리를 위한 혁신 프로세스 구축이나 현업에 대한 지원과 조정자 역할, 나아가 미래 가치 극대화를 위한 미래준비경영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사실 200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CFO의 개념이나 역할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혼란한 시기에 ‘최우수 아시아 CFO 상’1 을 네 차례나 연속 수상한 한국 대표 기업 삼성의 CFO, 최 전 부회장이 ‘CFO는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파트너로서 혁신의 선도자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그것도 자신이 정의한 CFO의 다섯 가지 역할 가운데 첫 번째 역할로 두면서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상황이야 달라졌지만 CFO가 혁신의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처럼 꽤 연원이 있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혁신의 선도자라는 CFO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지금 시기를 되짚어보면 어떨까? 오늘날 CFO 역할의 핵심은 바뀌었는가? 바뀌었다면 형식이 바뀐 것인가, 내용이 바뀐 것인가? 이제는 필요가 없어진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근본적인 관점에서 CFO는 지금도 혁신의 선도자인가? 혁신의 리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어쩌면 과거로 후퇴해 다시금 혁신의 ‘뒷다리’를 잡는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CFO의 혁신 DNA는 어디에서 왔는가?

‘CFO는 혁신의 리더, 혁신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는 말은 CFO에게 혁신 DNA와 혁신 리더십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DNA는 어떤 이유로, 언제, 어떻게 형성됐을까.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은 유기체의 숙명이다. 적응하면 살아남아 번성을 도모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고 사멸한다. 스스로 알아서 변화하지는 않는다. 바뀌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을 때만 어쩔 수 없이 변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의 적응력이나 변화의 속도가 그리 빠른 편도 아니다. 바뀌는 걸 싫어한다. 어떻게 하든 안 바뀌고 싶어 한다. 하던 대로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환경이 바뀌면 대부분은 도태한다. 일부는 아예 사라진다. 특히 엄청난 수준의 혁신적인 변화가 급격히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상황 인식조차 못하고, 변화의 시도도 못해보고 우왕좌왕하다가 도태되거나 사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설적이지만 변화와 혁신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죽지 않고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이다. 바로 죽지 않기 때문에 생존의 길로 가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로 죽거나 서서히 죽는 것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이나 조직, 누구에게도 목표가 될 수 없다.

재무는 혁신이나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사업적 의사결정에서도 리스크 관리를 책임지고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이다. 사업의 추진 주체라고 여기기보다는 지원자나 감시자 혹은 통제자 역할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계획과 진행의 부정적인 측면과 실패의 가능성을 점검하고 뭔가 제동을 거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과거에는 통제 위주의 시스템과 역할이 중심이어서 사업의 방해자라는 인식도 강했다.

그런 CFO가 스스로 혁신하고 나아가 조직의 혁신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당연히 형식적인 수사학처럼 들린다. 아마 지금도 그 관행과 잔상이 곳곳에 남아 있어서 인식 전환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 상황이 완전히 바뀐다면 CFO라고 이를 피해 갈 방법은 없다. 바뀌지 않으면 죽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저 아래로 도태되는 상황에서 CFO도 예외가 아니다. 혁신성과 혁신 DNA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생겨난다. 바뀌지 않으면 진짜 죽을 수밖에 없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싹이 튼다. 조금이라도 피해 갈 수 있고 모면할 수 있는 틈이 있으면 생기기 어렵다.


CFO는 대격변의 전환기에 등장했다

한국의 CFO들이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던가. CFO의 혁신 DNA와 혁신성을 이해하고 혁신 리더로서 CFO의 역할을 다시 한번 짚어보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계기와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경영사에서 가장 큰 변화의 충격을 던진 사건은 이론의 여지없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다. 한국에서 CFO의 새로운 역할 인식과 혁신성의 뿌리가 태동한 것 역시 IMF(국제통화기금)발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본다. CFO들이 가장 필사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고자 노력하던 시기다. 산업자본주의 토대 위에서 한국은 수십 년간 치열하게 노력해 최하위 극빈 국가 그룹에서 단기간에 지구상에서 가장 급성장한 성공 모델 국가가 됐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부정당하고 순식간에 무너지는 상황이 닥쳤다. 파국은 미처 손쓸 새도 없이 하루아침에 벌어졌다. 자산가치는 순식간에 추락하고 모든 것이 평가절하됐다. 금융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칼날은 사정없이 춤을 췄다. 외환 유동성 위기에 따른 IMF 구제금융 상황과 이에 관련된 사건들은 수없이 많은 근본적인 고민과 혁신 과제를 던졌다. IMF 구제금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의미의 쓰나미도 덮쳐 왔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ICT) 혁신으로 촉발된 벤처 스타트업 붐이었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이전에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근본적인 환경 변화와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불릴 만큼의 혁신 상황을 맞았다.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전환하는 대격변의 시기에 비로소 한국의 CFO가 등장했다. CEO라는 말은 흔하게 쓰이고 있었지만 CFO라는 말은 일반인들에게는 완전히 생소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어떤 사람이 “UFO는 알겠는데 CFO는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어보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쨌든 명함에는 ‘CFO’를 써넣었다. ‘부사장/CFO, 전무이사/CFO, 상무이사/CFO, 이사/CFO’처럼 말이다. IMF를 겪으면서 보니 미국 기업에는 CEO뿐만 아니라 CFO라는 직책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직책이 있어야 우리 회사도 뭔가 구태의연한 회사가 아니고 새로운 변화에 맞춰가는 회사인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형식이 먼저 등장했지만 물론 내용과 본질에 대한 고민과 노력도 금세 뒤따랐다. 당시 자주 열렸던 세미나와 강연에는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CFO의 역할’과 관련한 주제가 거의 빠짐없이 등장했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베테랑 재무회계담당 또는 경영관리담당 책임자는 물론이고 CEO들도 활발하게 질문을 던지고 이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모든 것이 바뀐 상황이니 재무전략이나 실무적 주제들도 다양하게 다뤄졌지만 핵심 질문은 하나였다. ‘새로운 CFO의 역할, 즉 새로운 경영환경에 맞는 CFO의 역할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당시 자신의 역할과 수행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토론하던 수많은 베테랑 재무, 경영관리, 전략, 기획, 경리, 회계, 자금담당 책임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스스로 혁신해야 하고 소속 기업의 혁신 방향과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과 절실함이 모두에게 넘쳐났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수십 년간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해왔고, 일을 잘해서 임원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당시에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CFO를 만났는데 명함을 받을 때 CFO라는 직함이 보이면 “아, CFO 맡고 계시네요”라고 반갑게 먼저 인사말을 건네곤 했다. 그럴 경우 “아, 네, 뭐… CFO라기보다 그냥 이것저것 다 맡고 있습니다”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일부 대기업 CFO나 아주 작은 혁신 벤처 스타트업의 젊은 CFO들이 오히려 “네, 제가 이 회사 CFO를 맡고 있습니다”라고 명확히 반응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낯설고 의아했다. 그동안 자신 있게 열심히 수행해 왔던 ‘경리담당’ ‘회계담당’ ‘자금담당’ ‘관리담당’ 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 새로운 역할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체성’의 위기였다. 자신의 직무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 개념이 흔들리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까지 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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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무·회계 분야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자금조달원과 자금조달방식에 대한 전환이다. 기존의 대출방식(Debt financing)에서 직접조달방식(Equity financing)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과거에는 대출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경영관리방식과 성과지표, 재무전략과 재무관리, 지배구조와 이해관계자, 대내외적 경영 커뮤니케이션 등이 모두 여기에 맞춰져 있었다. 대출방식의 핵심은 ‘갚을 수 있을 때만 빌려준다’는 것이다. 다른 건 별로 필요 없다. ‘갚을 능력’은 기본적으로 담보에 의해 판단한다. 덩치가 클수록 망할 위험이 적다고 보고 더 큰 곳에 더 잘 빌려주고 더 많이 빌려줬다. 기업도 은행도 담보가 있거나 담보 관계의 확실성만 있으면 빌려준다. 사업성이 게재될 여지는 거의 없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기에는 이런 시스템과 능력이면 충분했다. 다른 건 필요도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수십 년간 일했고 기업과 국가는 크게 성공했다. CFO의 역할은 별로 필요도 없었고 ‘자금담당’ ‘경리담당’ ‘관리담당’이면 충분했다.

이 관점에서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은 과잉이다.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이면 됐고 일부 국책은행이 정책적으로 결정된 집행을 담당하면 문제가 없었다. 전혀 문제없이 여기 맞춰서 각자의 역할을 다한 결과로 고속 성장을 이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터졌다. 자금조달 원천과 방식이 달라지면서 기업의 지배구조, 투자자 관계,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사업 추진과 경영방식 등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출 방식에 맞춰 모든 역할과 업무 전문성을 키워왔는데 이제 그런 방식만으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 베테랑이었던 재무·회계 담당자들이 일제히 혼란에 빠진 이유다. 이런 상황은 우리 기업에 강력한 혁신의 환경과 배경이 됐다.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특히 재무·회계 영역은 사활을 걸고 혁신의 본질적인 방향과 방법을 모색했다. 엄청난 환경 변화를 직면하고 이를 뚫고 더 높은 수준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유기체의 숙명을 마주한 것이다.

외부적 압력은 혁신의 진정성을 강제했다. 이것이 한국 CFO들의 혁신 DNA와 혁신 리더십의 모태다. 성장과 성공을 가져온 과거의 방정식과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역할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그간 한국식이라는 구실과 방패를 자의적으로 휘두르고 그 뒤에 안주했다면 이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글로벌 경쟁이라는 새로운 기준과 역할 의식으로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분명해졌다. 과거의 재경담당이 아닌 CFO라는 직과 역할을 만들었다. 이 관점에서 한국의 CFO는 출발부터 과거의 관행과 관습을 넘어 새로운 환경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혁신 리더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CFO가 스스로를 혁신하고 나아가 혁신의 리더, 즉 혁신의 선도자가 돼야 하는 일차적 배경이다. 최 전 부회장이 앞에서 말한 ‘혁신의 선도자로서 CFO’라는 말에도 이 역사와 맥락이 고스란히 담겼다.

물론 CFO라는 역할이 제대로 자리 잡는 건 쉽지 않았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토로한 어려움은 ‘한국식 경영과 지배구조, CEO의 인식 부족’이었다. 소위 한국형 경영방식과 지배구조하에서 선진화된 CFO 역할에 대한 CEO의 인식이 뒤떨어진 경우 상황을 바꾸기가 매우 어려웠다. CEO들이 CFO를 경영 파트너로 인식하기란 쉽지 않았고 의사결정 권한의 수직적 성격과 수평적 CEO-CFO 경영 파트너십 관계에 대한 이해와 경험도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CEO들도 CFO 이상으로 환경 변화의 충격을 체감하고 변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돼 있었다. 다만 혁신의 의지와 방향을 잡았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컸다. 현실 조건과 의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으며 법과 제도는 항상 뒤에 처져 있는데 시장의 조건과 경쟁 환경은 미래적이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에 대한 어려움이었다.


CFO는 여전히 혁신 리더인가?

문제는 지금이다. CFO가 이 땅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 20여 년이 지났다. 지금의 핵심 질문은 과거와는 조금 다르다. 혁신의 선도자로서 CFO의 역할과 리더십이 계속 성장하고 진화해 왔는가? CFO는 여전히 스스로 혁신하고 있는가? 혁신 리더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최근의 현장 분위기를 보면 지금까지의 노력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CFO들은 혁신 리더로서 CEO의 파트너로서 혁신의 방향을 잡고 선도하는 파트너십을 보여줘야 하는데 과거에 비해 오히려 기존의 영역으로 후퇴하거나 혹은 역할이 한정적으로 현격히 축소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한국에서 CFO 역할이 본격적으로 조명되는 데 큰 역할을 한 『CFO : 기업가치 창조의 리더(CFO : Architect of the Corporation’s Future)』라는 책이 있다. 역자들은 서문에서 CFO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의 고민과 관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역자들은 “CFO라는 용어를 ‘기획 및 재무 최고경영자’로 정하게 되었다…(중략) 역자들은 CFO의 역할을 보여주는 의도로서 사용될 때에는 기획 및 재무로 번역”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기업은 보통 재무담당 임원이라 하면 재경본부의 임원만을 지칭한다. 즉 경영계획본부와 재경본부가 구별돼 기획업무와 일반 업무가 분리돼 있다. 물론 기업에 따라 두 본부를 총괄하는 임원이 있어 CFO의 개념을 도입한 기업도 있으나 보통은 경영기획본부, 비서실 또는 기획실의 임원이 총괄한다. 따라서 기획과 재무업무 간의 높은 상관관계를 무시한 의사결정 및 정책이 실행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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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는 근본적으로 기획과 재무에 대한 총괄 최고위 책임자다. 만일 재무 영역으로만 후퇴하거나 국한한다면 예전의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CFO의 역할은 과거로 회귀하고 축소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상황을 보면 더 큰 우려감이 든다. 오히려 앞으로의 사업 환경 추이를 보면 CEO의 파트너이자 혁신의 선도자로서 CFO의 역할과 CEO 파트너십은 훨씬 더 강화돼야 맞다. 재무를 핵심으로 하지만 CFO의 영역은 생각보다 크다. CEO와 공통 영역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단순한 재무 부문 책임자나 재무 전문가의 소양만으로는 어렵다. [표1]에서 보듯이 80~90% 이상 겹칠 정도로 CEO-CFO 파트너십과 상호 협력은 더욱 긴밀해지고 강화돼야 한다. 이것이 미래 경영과 경쟁 환경에 훨씬 더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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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CEO-CFO 파트너십과 협력 체제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강화하지 못하고 CFO의 역할이 단지 재무영역으로 한정되고 축소된 개념으로 퇴보한다면 팀 경영 체제인 CEO-CFO 구조의 기능과 경영 체제 자체의 경쟁력이 약화한다. 예전 방식으로 재무 파트는 기획 기능과 분리돼 한정된 재무 기능과 역할만 하고 CEO가 다른 방식으로 이를 해결해 경영이 편의성 위주로 가게 되는 구조다. 중장기적으로는 기업 자체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경영 역량과 시스템의 수준도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편의와 퇴행의 악순환에 빠지면 선진 경영 시스템으로 진화 발전하지 못하고, 경영진의 역할은 경직되며, 편의적 경영을 반복하게 된다. [표 1]에서 보듯이 CEO와 CFO는 마치 한 몸과 같은 협력관계를 통해 최상위 비전 수준의 파트너십을 가져가야 한다. 이를 통해 최고 수준의 혁신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CFO는 미래형 혁신의 선도자로 진화해야 한다

CFO는 미래형 혁신 리더가 돼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과 평면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인사이트는 명확하다. 초강대국 리더십과 비즈니스 이니셔티브는 미래를 그릴 줄 알고 선도하는 힘이다. 미래를 제시하고 이를 현재의 가치와 자본의 원천으로 삼는다. 달리 말하면 미래를 현재 가치로 전환하고 이를 자본화해 미래 투자에 드라이브를 거는 방식이다. 이것이 혁신의 지향점이며 혁신의 방향을 잡는 기준이다.

미래를 제시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그리고 핵심 도구는 혁신, 특히 미래형 기술혁신이다.이다. 기업의 혁신 DNA나 경영자의 혁신성 없이는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미래를 현실화하는 사업을 기술혁신으로 미친 듯이 몰고 가는 것이 기본 전략이다. 그렇다면 CFO는 왜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다뤄야 하는가? 미히르 데사이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재무적 의사결정은 가치평가를 비롯한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미래에서 찾는다”라고 말한다. ‘미래가 가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을 수단으로 미래 가치를 현재의 자본과 동력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미래형 혁신 마인드와 리더십은 과거의 혁신과는 다르다. 과거의 혁신 DNA가 엄청난 외부 환경 변화로 초래됐다면 지금의 혁신 리더십은 스스로 ‘내생적 동기와 동력’을 가져야 한다. 내일의 세상을 제시하고 사업의 핵심 모델로 만들기 위해 모든 방식의 혁신을 활용해야 한다. 어떤 방해물이 나타날지, 어떤 양상과 상황으로 펼쳐질지 예상 자체가 어렵다. 새로운 방해물과 어려움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예측하기 힘들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헤쳐 나가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지난번에 했던 성공 방정식이나 과거에 성공했던 전례를 ‘따라잡는’ 방식은 의미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방향을 가지고 미래형 혁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패를 리스크로 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패가 곧 리스크라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다. 기술혁신이 확실한 수단이긴 하지만 어떤 혁신이, 언제 어떤 식으로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실패는 일상이지만 이것이 진짜 실패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성공 방정식인지는 확실치 않다. ‘위험(Risk) = 보상(Return)’ 개념은 재무의 기초다. 사업에 따른 위험 정도가 일반적이라면 기대되는 수익도 일반적일 뿐이다. 위험 정도를 훨씬 상회하는 엄청난 수익률은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헛소리다. CFO가 미래형 혁신 리더로서 미래 비전에 대한 리더십과 파트너십이 확고하지 못하면 이 시각 아래에서 혁신의 싹을 자르거나 짓밟는 일을 할 수 있다. 아예 그런 일을 하고도 본인은 모를 수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자신이 할 일을 성실히 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기업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예전보다 성장하고 성공했다는 것은 잃을 것도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관성에 따르면 위험에 대한 재정의 없이 과거 형태의 위험관리(Risk management)에 더 치중하게 된다. 위험(Risk)과 보상(Return)의 상관관계는 부정당한다. 이미 시장과 경영환경은 새로운 차원의 우주에 진입했는데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자기 역할을 재정의하지 못해 자가당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미래를 다루고 이끌어 나가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과거와 같이 뒤를 쫓아서 따라잡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선도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래가 가치의 핵심 원천이 되는 것이다. 엄청난 리스크가 있고 이것을 뒤집으면 이와 등가하는 수익률이 기대되는 이치다.

수년 전 어떤 기업의 IR 책임자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전년도에 역대 최대 실적을 발표했는데 주가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입증된 현재의 실적 능력과 별도로 미래 비전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는 표시다. 미래형 혁신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시장에서의 위치도 흔들린다. 단단히 재무를 틀어쥔다고 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치 측면에서 현금흐름 경영의 핵심은 현금 보유랑이 아니라 현금창출 능력을 의미한다. 그것도 미래현금 창출력이 가장 중요하다. 기업의 덩치가 어마어마해도 소용없다. 초소형 혁신 스타트업의 영향력이 훨씬 강력한 시장 주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코끼리가 토끼처럼 뛸 수도 있어야’ 한다. 자본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 압도적 미래 가치를 선도해가지 못하면 시장에서의 실제적 대우와 조건은 완전히 달라진다. 가장 최악은 기대할 것이 없을 때이며 이런 상태에 빠지면 되돌리기 쉽지 않다.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성과와 저력만을 되풀이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런 상황에 빠진 것이다. 개인도 기업도 그렇고 국가도 마찬가지다. ‘과거가 어떠했는가’보다는 ‘미래가 어떠할 것인가’의 문제다. 미래형 혁신 리더의 소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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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그럴듯하게 제시하고 무모하게 도전하는 배경에는 인터넷을 넘어 모바일로 개인까지 연결된 엄청난 정보통신망과 첨단기술혁신, 그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 자본시장의 유동성과 요구수익률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내생적 혁신 DNA와 만나 새로운 기업 전략과 창업 환경을 생성한다. 과거와 같이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수준이 아니다. 경기장이 다르다. 과거 IMF 시기가 외부의 환경 변화가 강제한 혁신이었다면 현재 진행되는 혁신 드라이브의 본질은 내생적인 자기 동기이다. 강한 자기 동기를 가지고 미래형 혁신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이 그렇듯이 이 또한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이다. 한눈을 팔거나 잠깐만 안일해도 밀려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동기를 스스로 끌어내고 사업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미래형 혁신리더’가 CFO의 핵심 역할이 돼야 한다. CEO와 미래 비전을 확고히 공유하고 이를 현재 가치로 제시하고 현실화하는 프로세스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CFO는 미래형 혁신의 선도자로서 새로운 혁신의 이니셔티브를 가져야 한다. 이를 포기하면 퇴보하고 도태된다.

한국의 CFO는 이미 혁신의 리더이자 선도자로서 역할과 정체성을 정립한 경험이 있다. 그 과정을 통해 혁신 DNA를 형성하고 혁신 리더십을 장착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이것이 계속 진화하고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또한 지금 요구되는 혁신과 리더십은 과거와는 다르다. 외부 압력보다는 내생적 자기 동기를 엔진으로 추진력을 내기 때문에 더 폭발력이 크다. 현재를 개선해 사업 기회를 잡는 것이 아니라 꿈으로 그리는 엄청난 미래를 과감하게 끌어와서 사업화하는 일이다. 더욱 진화된 역할 인식이 필요하다. 한 차원 높은 자기 혁신과 역할 재정립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질문은 같다.

“당신은 미래형 혁신의 선도자가 맞습니까? 당신은 미래형 혁신 리더입니까?”


유능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터가 되라

한 가지 덧붙이면 최근에 CFO와 재무 부문에 가장 요구되는 소양과 역할은 유능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터(Business Communicator)’다. 모든 혁신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협업이다. 협업의 기본은 커뮤니케이션이다. 특히 사업적 커뮤니케이션이다. 그 책임과 역할이 CFO에게 있다. 재무 부문에서 ‘앞으로 10년을 놓고 볼 때 이전 10년과 가장 차이 나는 핵심 역량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것은 재무에 대한 전문 역량이 아니라 바로 경영 커뮤니케이션 혹은 사업 커뮤니케이션 역량이다.

외부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특히 조직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재무부서나 비전공자 구성원(non-finance people)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다. 재무회계라는 전문적인 외계어를 마구 휘두르면서 ‘답답해 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다. 아무리 혁신 DNA와 혁신성이 뛰어난 리더라고 해도 유능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터가 되지 못한다면 미래형 리더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미래형 혁신 리더는 재무적 전문성에 기반하되 미래 비전과 방향성을 CEO를 비롯한 조직 내외부 협력자 및 이해관계자들이 쉽게 납득하고 동기화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능력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앞으로의 CFO는 미래형 혁신과 리더십에 맞는 유능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터여야 한다.
  • 심규태ktshim@cfoschool.com

    한국CFO스쿨 대표

    심규태 대표는 국내 최초로 경영자의 재무리더십과 CFO 역할에 특화된 한국CFO스쿨을 설립해 CFO Advanced Program, 예비 CFO과정, 디지털 CFO과정, 스타트업 CFO 과정, 재무리더십 최고위과정, 재무 통찰력 과정 등을 직접 설계해 운영했다. CFO SUMMIT, 재무경영 사례대전 등과 같은 지식 이벤트도 개최했다. 주요 저서·역서로는 『성장을 주도하는 CFO 재무리더십』 『리더정신』 『스타트업 CFO와 창업재무』 『리스판서블 컴퍼니 파타고니아』 등이 있다. 미국 휘트워스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고 현재 피플앤인사이트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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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백상경baek@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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