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olumn
새로운 범용 기술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두 부류로 갈린다. 기존 강자는 그것을 도구로 쓰며 하던 일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만든다. 반면 신규 진입자는 같은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기관과 시스템 자체를 다시 짓는다. 시장의 판을 바꾸는 쪽은 언제나 후자다. 실리콘밸리 기술의 최전선인 헬스케어 AI에서도 이 장면이 그대로 펼쳐지고 있다. 전자의무기록의 지배자 에픽(Epic)은 AI를 자사 소프트웨어에 새로운 기능으로 얹었다. 미국 의료 AI 스타트업 애브릿지와 앰비언스는 의사의 진료 기록을 대신 써주고, 오픈에비던스는 의사가 임상 근거를 더 빨리 찾게 해준다. 모두 훌륭한 제품이다. 그런데 모두 병원의 기존 업무를 더 빠르고 똑똑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시 말해 낡은 몸에 AI를 덧대는 방식이다.
반대편에서는 소프트웨어로 병원을 만드는 새로운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벽도, 대기실도 없다. 환자는 병원을 찾아가는 대신 헬스케어 앱을 켜고 매일 건강을 체크한다. 이는 기존 병원을 더 빠르게 움직이는 시스템이 아니다. 병원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한 것이다. 매일 환자의 곁에 있는 서비스만이 진료실 밖에서 벌어지는 작은 이탈을 포착하고 환자가 대면 진료에서는 미처 말하지 않거나 숨기던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치료할 수 있다. 방문 단위로 작동하는 기존 병원으로는 닿기 어려운 결과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자본도, 환자도, 브랜드도 가진 거대 병원은 왜 디지털 기반으로 병원을 새로 짓지 않을까. 그들이 새로 짓는 순간, 자기 본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러 겹이다. 먼저 손익구조다. 기존 병원의 매출은 환자가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발생하는 청구에서 나온다. 그런데 무료에 가까운 매일의 관계로 진료의 중심을 옮기는 순간, 지금의 수익원이 잠식된다. 고객이 옛 방식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점도 제약 요인이다. 기존 의료기관들이 반복해서 확인하는 사실이 있다. 환자에게 AI를 권하면 상당수가 “사람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기존 병원이 환자를 AI로 옮기려는 순간, 오히려 환자를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존 병원은 본체를 유지한 채 AI를 덧붙일 수밖에 없다. 판을 새로 짜는 일이 신규 진입자에 오히려 유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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