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가 끝나고 추석이 지나면, 팀장들에게 익숙한 메일이 날아온다. “2026년 사업계획을 위해 첨부 파일을 참고하여...” 그리고는 모두들 똑같은 행동을 한다. 파일을 열어 지난해 것을 복사하고, 숫자 몇 개를 바꾸고, KPI 목표치를 조정한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말이다.
BCG-MIT 공동 연구 결과를 보면 이런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리더의 60% 이상이 KPI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실제로 바뀌는 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성과관리는 관성에 의해 반복되는 연례 의식으로 전락했고, 이는 팀원들의 능동적 참여를 저해하며 조직 전체의 혁신 역량을 약화시키고 있다.
KPI 수정부터 시작하는 성과관리의 문제점을 이해하려면 성과관리 시작의 근원을 봐야 한다. 모든 기업에는 미션, 비전, 핵심 가치가 있다. 미션은 조직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고, 비전은 그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미래 모습이며, 핵심 가치는 그 길을 가는 방향성이다. 이를 합쳐 ‘가치체계’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조직의 가치관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조직에서 이 가치체계가 벽에 걸린 액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홈페이지에는 멋지게 적혀있지만, 정작 팀장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입사 면접 때 외웠던 내용을 몇 년 후에 누가 기억할까? 누구나 멋진 좌우명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좌우명대로 일관되게 사는 사람은 흔치 않다.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가치체계를 모를 때 발생하는 문제가치체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성과관리를 하면 2가지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첫째, 정당성 부족이다. 가치체계는 경영진의 경영 철학이 담겨 있어서, 이와 직결되지 못하는 성과관리는 원칙적으로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팀원들은 왜 이런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고, 겉으로는 따르는 것 같아도 진정한 몰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제대로 설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일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한다. 팀원들에게는 그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일의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데 특히 요즘 젊은 팀원들은 일의 목적과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치체계와 분리된 성과관리는 단순한 숫자 맞추기로 전락해버린다.
가치체계와 정렬된 중장기 경영 방향이 제시되고 이에 맞춰 연간 전략이 도출돼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큰 문제가 있다. 많은 조직이 전략과 계획을 헷갈린다는 것이다. 과제들을 나열하고 월별 또는 분기별로 일정을 담은 것을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전략은 할 일 리스트가 아니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이유를 담고 있는 주장이며, 우선순위와 자원 배분에 대한 판단이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매년 습관처럼 하는 사업계획은 내용 현행화 정도에 그쳐서 전략적 고려는 빠진 채 숫자를 맞춰내려는 활동 리스트 정도로 이해되는 면이 크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한 회사에서 매출 증대 지시가 내려오자, 여러 영업팀장들이 팀원 수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투입을 늘리면 산출이 더 나온다는 1차원적 사고였다. 이를 본 CEO가 한 마디 했다. “사람 늘려서 매출이 더 나온다면 왜 올해는 안 했나요?” 팀장들의 얕은 전략적 사고를 여실히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런 식으로 전략과 계획을 혼동하며 편의주의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전략은 온데 간데없고, 내년 실행 일정만 짜게 된다. 매년 이런 일이 반복되면 팀장과 팀원은 상위 방향보다 하위 계획 수립에만 매진하게 되고, 작년 계획을 업데이트하는 수준에 머물게 된다. 결국 현업 부서의 전략기획 역량은 정체하고, 전략과 실행의 갭은 더 커진다.
가치체계를 지키는 팀장이 되고 싶다면?현업 팀장 개인이 성과관리 체계를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전사적 정책이나 제도와 얽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장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 우선 가치체계의 적극적 전파자로 활약해야 한다. 회사가 가치체계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해서 팀장마저 무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가 월급 받는 숨은 이유는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할 동안 개인의 가치관을 후순위로 하고, 조직의 가치관을 1순위로 놓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월 1회 팀 미팅 시작 전 5분간 가치체계 중 하나를 선정해 토론해보자. “이번 달 우리 프로젝트 중에서 회사의 핵심가치인 '고객 중심'을 가장 잘 실현한 사례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져 추상적인 가치를 구체적인 업무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분기별로는 팀원들이 일상 업무에서 회사의 미션이나 비전을 실현한 구체적 사례를 발표하게 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신규 프로젝트나 중요한 의사결정 시에는 반드시 가치체계와의 연관성을 검토하는 체크리스트를 적용한다.
다음으로는 숫자가 아닌 의미로 성과를 재정의해야 한다. KPI 항목에서 시작하는 성과관리는 결국 타겟 숫자 달성에만 몰두하게 만든다. 성과관리 초기 단계에서 팀장은 절대 숫자를 먼저 던져서는 안 된다. 우선 올해 성과의 수준과 의미를 공유해야 한다. 마케팅팀의 온라인 바이럴이 목표 20만 건을 넘어 22만 건을 달성했다면, 단순히 "10% 초과 달성"이라고 말하지 말고, 22만 건의 바이럴이 신규 브랜드 확산의 발판이 됐으며, 온라인 채널 강화라는 전략 목표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사람은 추상적 개념에서 구체화 과정을 거치면서 전략적 사고를 동원하게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여지가 생기고, 숫자는 사고의 결과일 뿐이다.
대화 방식만 바꿔도,가치체계를 지킬 수 있다?팀원들이 전략적 사고를 통해 목표 설정 초안을 만들었다면, 이제 3C 원칙을 기반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첫째는 명확성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명확성은 상황과 여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다. "시장 상황이 불확실하다"가 아니라 "경쟁사 A의 신제품 출시로 우리 주력 상품군에서 월 평균 5%의 점유율 하락이 예상되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B와 C 전략을 검토 중"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둘째는 연결감이다. 각 팀원과 1대1 면담을 통해 개인의 업무가 팀 목표, 부서 목표, 회사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시각화한 '연결 지도'를 작성해보자.
셋째는 코칭이다. '위에서 결정했으니 따라라' 식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목표 설정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코칭 질문을 미리 준비해두고 체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전략적 맥락을 일상 업무에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매주 월요일 15분간 '전략 체크인' 시간을 가져보자. 각 팀원이 이번 주 수행할 주요 업무 중에서 팀의 전략적 목표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를 하나씩 선정해 발표하게 하되, 해당 업무가 왜 전략적으로 중요한지를 스스로 설명하도록 한다. 분기별로는 수행한 주요 업무들을 전략적 영향도에 따라 높음-중간-낮음으로 구분하고, 높은 영향도를 가진 업무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간다. 월 1회 팀 미팅에서는 팀원들이 자신의 업무 경험을 통해 회사의 전략이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는지를 이야기 형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지속적 피드백과 조정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성과관리는 연초에 목표를 설정하고 연말에 평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월 마지막 주에 팀 전체 성과 리뷰를 실시하되, 단순한 진척도 점검이 아니라 목표의 적절성과 전략적 정렬도를 함께 검토한다. 분기별로는 팀원, 타 부서 협업 파트너, 상급자로부터 다면 피드백을 수집하는 360도 피드백 시스템을 활용하고,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모두 공유하며 교훈을 정리하는 학습 세션을 개최한다.
성과관리의 진정한 시작은 연초 KPI 설정이 아니라 조직의 미션과 비전에서 출발하는 전략적 정렬 과정이다. 현재의 맥락 없는 성과관리는 팀원들을 수동적 업무 수행자로 만들지만, 전략적 정렬이 명확한 성과관리는 팀원들을 능동적 가치 창조자로 변화시킨다. 팀장의 역할은 단순히 목표를 할당하고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 각자가 자신의 업무를 통해 조직의 더 큰 목적에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에디팅ㅣ이한규
Copyright Ⓒ 동아비즈니스리뷰.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