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며 성장했지만 정부 주도의 수출 중심 경제와 모방을 통한 기술 추격으로 일군 고속 성장은 여러 부작용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건전한 경쟁보다는 정경유착과 부패가 만연하고 개인적 친분에 의해 경제적 기회와 자원이 분배되는 패거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가 등장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점진적 혁신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창업을 가로막는 규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공공 선택 문제, 실패에 대한 사회적 낙인 등으로 인해 창조적 혁신에서는 미흡한 성과를 보였다. 이런 제도적 병목을 극복하고 창조적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근본적인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은 혁신이 필요한 영역에 별도 조직을 두고 보상 체계를 재설계해야 하며, 중간관리자의 소통 역량을 키우고, 외부 파트너와의 협력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장려해야 한다. 또한 제도 개혁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갈등은 현명하게 조율하면서 변화에 저항하는 집단도 포용할 수 있는 중도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은 정치 및 사회 제도가 한 국가의 경제 성장과 번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받았다. 아제모을루와 로빈슨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가 한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제도경제학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제도경제학에서 말하는 ‘제도(institutions)’란 한 사회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을 규정하고 이에 영향을 미치는 공식적·비공식적 규범이나 규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세 학자는 제도를 크게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와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로 구분한다.
포용적 제도는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법치와 참여적인 정치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이를 통해 재산권 보호 등 경제 성장에 필요한 혁신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원하는 누구나 그러한 행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촉진한다. 반면 착취적 제도에서 정치 참여와 이익 추구에 대한 권리는 사실상 자원을 독점적으로 통제하는 소수 엘리트에 귀속돼 있다. 이로 인해 다수의 사람이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추구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건전한 경쟁과 혁신에 대한 유인이 현저하게 저해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소회를 밝히는 인터뷰 자리에서 세 학자는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가 한 국가의 번영과 빈곤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과 북한을 꼽았다. 한국은 경제 성장과 더불어 정치 민주화도 성공적으로 이뤄내며 동아시아식 경제 발전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한국만큼의 경제적, 정치적 성장을 이룬 국가는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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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yseongkim@sogang.ac.kr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Berkeley)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상하이 공과대에서 조교수를 지내다 서강대로 옮겨 국제경영 및 전략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혁신과 기업가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