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알츠하이머와 파킨슨 병 등 ‘퇴행성 뇌질환’을 두려워한다.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 모두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퇴행성 뇌질환의 주요 원인으로는 노화, 알코올, 특정 단백질의 비정상적 축적 등이 꼽힌다.
제약 업계는 수십 년간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뇌에 있는 뇌혈관장벽(Blood Brain Barrier, 이하 BBB)이 외부 물질의 유입을 막아, 약물이 뇌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계는 뇌 속 병리 단백질을 직접 제거하거나 BBB를 열어 치료제를 전달하는 새로운 접근 방법을 모색했다.
강동경희대학교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이자 바이오 스타트업 레디큐어를 이끄는 정원규 대표도 한 축을 담당한다. 레디큐어가 주목한 것은 일반 X선보다 훨씬 낮은 선량과 에너지에서 펄스형 빔을 방출하는 ‘디지털 X선’이다. 디지털 X선을 환자의 뇌에 쏘면 다양한 효능을 발휘한다. 먼저 뇌 속 미세아교 세포의 기능을 활성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퇴행성 뇌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을 제거한다. 염증 완화와 신경 재생도 돕는다. 동시에 BBB를 잠깐 열어 기존 약물이 뇌에 도달하도록 지원한다.
KHF2025에서 혁신대상을 받은 레디큐어의 정원규 대표 / 출처=IT동아
레디큐어는 2021년 문을 연 후 디지털 X선 조사 기기 ‘헬락슨(HeLaXON)’을 꾸준히 연구 개발했다. 덕분에 헬락슨 1X의 원형 모델(프로토타입)을 완성하고 동물 실험과 탐색 임상에서 안전성,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한, BBB 개방 기술을 활용해 차세대 뇌 내 약물전달 플랫폼 ‘에파타(EPATA)’도 병행 개발한다. 헬락슨이 비약물 치료 솔루션이라면, 에파타는 디지털 X선을 통해 BBB를 선택적 개방해서 다양한 뇌질환 치료제를 뇌로 전달하는 브레인 DDS(Drug Delivery System, 약물 전달 시스템) 플랫폼이다. 현재 미국 조지아주 MCG(Medical College of Georgia)와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며, 글로벌 확장성을 가진 차세대 파이프라인으로 주목받는다.
이러한 성과는 외부에서도 인정 받았다. 레디큐어는 9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 병원의료산업 박람회(KHF2025)에서 대한병원협회 주관 ‘2025 KHF 혁신상’의 ‘혁신대상’을 수상했다. 헬락슨의 상품화 가능성, 나아가 퇴행성 뇌질환 비약물 치료라는 신기원을 열 잠재력을 공식 입증한 것이다.
레디큐어는 9월 현재 헬락슨 1X 시제품 개발을 완료하고 공인기관의 시험을 진행중이다.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임상시험수탁기관)와 협력해 연내 식품의약품안전처 IDE 승인을 받고 2026년 초 국내 임상을 개시할 계획이다. 이후 확증임상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고 2027년경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헬락슨 2X 또한 자체 차폐 구조를 적용해 중소형 병원에서도 사용 가능한 모델로 개발 중이다.
여러 파트너 기업도 레디큐어에 힘을 보탠다. CES 2025에서 최고혁신상과 혁신상을 수상한 X레이 영상장비 기업 포스콤, 카본 카우치를 제작한 CBH, 설계를 지원한 젠디자인이 대표적이다. 또한 9월 16일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와 업무협약을 맺고 저선량 방사선을 활용한 난치성 질환 치료 기술 및 의료기기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레디큐어는 방사선 정밀치료의 선도 기업으로 외연을 확장하며, 임상-인허가-사업화를 연결하는 개방형 협력 생태계를 구축한다.
레디큐어 헬락슨 / 출처=레디큐어
레디큐어는 민간에서 23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어 정부 연구개발 과제도 누적 59억 원 규모를 확보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딥테크팁스, 글로벌 R&D도 수행 중이다. 2025년에는 4월 스마트앤그로스 대표의 투자를 시작으로 8월 제이앤피메디파트너스와 ㈜덕인이 Pre-A 라운드에 참여했다. 레디큐어는 확보한 재원을 기반으로 임상과 인허가 추진 속도를 높이고 시리즈 A 투자 라운드 준비를 이어간다.
정원규 대표는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 특화된 디지털 X선 기기 헬락슨으로 환자들이 적절한 시기에 합리적인 비용으로 효과 좋은 치료를 받도록 돕겠다”며 “임상,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연구, 투자 유치 등 단계를 차례로 밟아 헬락슨과 에파타의 효용을 세계에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IT동아 차주경 기자(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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