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대중화가 대학 교육 현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일례로 경영 사례 리포트 작성이나 단순 지식을 묻는 퀴즈 같은 과제는 학생의 학습 성취도가 아니라 AI 활용 능력만 반영할 위험에 처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필자는 AI가 먼저 질문함으로써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 ‘소크라틱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대학원 수업에 도입했다. 소크라틱 AI는 학생의 답변에 따라 질문을 계속하며 학생들의 통합적인 내용 이해도를 심층적으로 평가함으로써 비판적인 사고를 촉진했다. AI 에이전트 개발 과정에서 교수자의 암묵지를 지식그래프 형태로 명시화하는 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교수자와 학생 모두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가 비판적, 통합적 사고 육성임을 되새길 수 있었다.
2022년 11월 30일, 챗GPT가 등장한 이후 대학 교육 현장이 격변을 맞이했다. 국제경영이나 경영 전략 수업만 봐도 그렇다. 이 수업들은 전통적으로 ‘경영 사례 분석 리포트’가 성적 평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학생이 수업에서 배운 경영학 지식을 바탕으로 실제 기업의 성공과 실패 요인을 분석하고 여기서 도출한 결론을 리포트 형태로 제시하는 과제이다. 학생이 스스로 리포트를 쓴다는 기본적인 전제하에서 교수자는 학생의 학습 내용 이해도와 더불어 분석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전달하는 글쓰기 능력까지 평가할 수 있었기에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측정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생성형 AI 서비스가 대중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학생은 다음과 같은 프롬프트 한 줄이면 몇 분 아니 불과 수십 초 만에 그럴듯한 리포트를 손에 쥘 수 있다.
“안녕? 경영 전략 수업에서 사례 분석 리포트를 내일까지 제출해야 해. 분석해야 하는 경영 사례는 아래에 첨부했어. A4 용지 10장 분량으로 사례에 들어 있는 기업에 대한 현재 전략 분석 및 미래 전략 제시 리포트를 작성해 줄 수 있어?”
AI에 이런 식으로 리포트를 주문하는 것은 과거 다른 사람에게 대필을 맡기거나 남의 리포트를 베끼는 부정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이 AI에 리포트 작성 ‘외주’를 주면 그 결과물은 학생의 학습 성취도나 고민의 깊이, 글쓰기 능력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런데 교수 입장에서 이는 단순히 ‘부정행위가 쉬워졌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기존의 과제나 수업법으로는 더 이상 학생들에게 의도한 학습 효과를 거두기 어려워졌다는 더 심각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AI 이용을 단순히 부정행위 측면에서 본다면 다른 부정행위와 마찬가지로 사용 자체를 금지하면 되는 문제가 아닐까?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생성형 AI는 기존의 부정행위 수단과 비교도 안될 만큼 접근성이 좋은데다 과제 대필 외에도 유용한 기능이 너무나 많다. 현실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단지 과제 대필을 막자고 AI 사용 자체를 막을 명분도 부족하다. 또한 기업들이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에서만, 특히 경영학과에서 이를 금지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대처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앞으로 학생들이 모든 과제를 AI에 의존하게 되면 스스로 생각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기존 교육 방식의 의미가 퇴색할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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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진chuljin.park@unsw.edu.au
UNSW시드니 경영대학 교수
필자는 서울대에서 국제경영·경영전략으로 학·석사를 마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경영전략·조직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UNSW(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기업 지배구조, 사회적 연결망, 디지털 전환 및 지속가능성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경영 전반과 경영학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