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너빌리티는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이 다시 주목받는 흐름 속에서 SMR(소형모듈원전)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2017년부터 선제적으로 시장 가능성을 검토해 2019년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섰다. 자사의 강점인 원전 주 기기 수직계열화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설계가 아닌 제조 ‘파운드리 모델’을 지향하며 뉴스케일, 엑스에너지, 테라파워 등 글로벌 SMR 설계사들과 긴밀한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부분의 설계사는 제품 개발에만 집중하고 생산은 외부에 위탁하는 팹리스(fabless) 구조를 취하고 있는 반면 두산은 인증 기준에 부합하는 제작 검토와 고객 맞춤형 커스터마이징 역량을 통해 신뢰를 얻으며 핵심 제조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 수백 개 원전 협력사와의 생태계도 SMR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재편되며 유지·확장되고 있다. SMR은 단순한 전력원이 아니라 미래 제조업의 기반이 될 플랫폼 기술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의 도래와 글로벌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확보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에너지 산업이 또 한번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때 기업 ESG 전략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RE100은 점차 그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신재생에너지로만 감당하기 어렵고 AI·반도체 등 고밀도 전력을 요구하는 산업군에서는 RE100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재생에너지 100%’ 대신 ‘탈탄소(Carbon-Free) 에너지 100%’라는 좀 더 실현 가능한 목표가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24시간 내내 탄소 배출 없는 전력만을 사용하는 ‘24/7 탈탄소 에너지 전략’을 표방하면서 기존의 RE100에서 한발 물러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안정적인 전력 수급과 탈탄소 목표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 바로 원자력이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부(U.S. Department of Energy, DOE)와 유럽연합의 지속가능성 분류 체계(EU Taxonomy)는 원자력을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공식 인정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대형 원전 대비 안전성과 확장성, 초기 투자 부담이 낮은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 SMR)이 차세대 원자력 기술로 각광받는 추세다. SMR은 300MWe 이하의 중소형 원자로로 모듈화 설계를 통해 건설 기간을 대폭 단축한다. 또한 아직은 요원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듈 생산 방식의 대량 제조와 반복 생산이 가능해 경제성도 확보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해 태양광이나 풍력 등 간헐적인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보완하는 ‘에너지 믹스’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