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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만큼만 일한다”는 ‘조용한 사직’ 확산

“권한은 안 주고 헌신 요구?” 침묵의 저항
자율성-공정 보상으로 자존감 회복시켜야

김영훈 | 425호 (2025년 9월 Issue 2)
사직서를 내지 않고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며 조직에 심리적 몰입이나 추가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조용한 사직’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직원 개인의 게으름보다는 직원이 자신을 조직의 부속품으로 인식하고 주인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구조적 조건의 산물이다. 조용한 사직은 직원 개인에게 일의 의미 상실과 정신적 소모를, 조직에는 생산성 저하와 이직률 증가 등의 심각한 손실을 초래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은 직원의 자율성, 참여적 의사결정, 공정한 평가 및 보상을 보장해 ‘내가 중요한 존재’라는 감각을 회복시켜야 한다.



며칠 전 지인의 추천으로 유튜브 채널 ‘닥터언니’를 보게 됐다. 의사 부부가 함께 출연해 병원에서 겪은 다양한 사례를 풀어내는 채널인데 그중 한 영상에서 실감 나는 사례가 등장했다. MZ세대 인턴의 행동을 전하는 장면이었다. 아래는 해당 영상에서 의사 한 분이 직접 겪은 일을 전한 대화의 일부이다.

제가 전공의 3년 차 때 중환자실 환자를 보고 있는데 인턴 선생님이 심전도를 찍고 계셨어요.

근데 제가 담당하는 환자 중 하나가 갑자기 부정맥이 굉장히 심하게 지나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막 맥박이 150회, 160회 되는 거죠.

인턴 선생님한테 그거 중단하고 지금 이 환자 빨리 찍어라 이랬어요.

그랬더니 이 인턴 선생님이 “나는 오늘 이거(일반 환자 심전도) 하고 퇴근이다”라고 하면서 “그건 오늘 당직인 다른 인턴을 부르세요” 이러는 거예요.

이 장면은 단지 한 사람의 무책임한 태도를 넘어서 일의 의미와 책임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오늘 이거 하고 퇴근이다’라는 말에는 본인에게 정해진 일 외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경계선이 담겨 있다. 겉보기엔 무단이탈도 없고, 정해진 일은 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현장에서의 정서적 연결과 책임감은 철저히 차단된 태도이다. 이런 사례가 특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런 태도가 모든 직업군에 전방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월급만큼만 일한다”는 사람들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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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갤럽이 2022년 직장인을 대상으로 ‘최근 직장에서 업무에 몰입하고 정서적으로 헌신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전체의 약 50%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조용한 사직자(quiet quitters)’로 분류됐다.1 이들은 정해진 역할만 최소한으로 수행하며 조직에 대한 심리적 몰입이나 추가적인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 집단으로 해석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발견된다. 채용 플랫폼 사람인이 2022년 직장인 3293명을 대상으로 ‘조용한 사직’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20대의 78.5%와 30대의 77.1%가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라고 응답했다(사람인, 2022). 그렇다고 40대 혹은 50대가 그런 경향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40대의 59.2%와 50대의 40.1% 역시 ‘조용한 사직’의 태도를 보였다. 이 조사는 국내 여러 신문을 통해 보도되며 한국에서도 조용한 사직이 더 이상 일부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했다.

‘조용한 사직’은 말 그대로 사직서를 내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직장을 떠난 상태를 의미한다. 2022년 미국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틱톡(TikTok)을 통해 처음 대중화된 이 용어는 “더 이상 직무 범위를 넘어서 무리하게 일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으로 특히 Z세대와 밀레니얼세대가 주도하며 확산했다. ‘업무 이상의 헌신을 강요받지 않겠다’라는 이 움직임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닌 조직에 대한 심리적 거리 두기이자 정서적 항의로 읽힌다. 이후 월스트리트저널과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등이 집중 조명하면서 ‘조용한 사직’은 오늘날 일터의 몰입, 동기, 관계를 둘러싼 중요한 조직심리학적 이슈로 떠올랐다.

최근 조직심리학과 산업·조직 분야에서 ‘조용한 사직’을 정교하게 이론화하고 측정하려는 시도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특히 미국 빌라노바대 경영대학원과 포르투갈 리스본대 산하 경제경영대학(ISEG) 교수 등으로 이뤄진 연구진2 이 개발한 ‘다차원 조용한 사직 척도(Multidimensional Quiet Quitting Scale, MQQS)’는 이 현상을 행동과 정서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포착한다. 이 척도는 연세대 연구진3 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 및 타당화돼 국내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검증됐다. MQQS의 가장 큰 특징은 ‘조용한 사직’을 단순히 ‘일을 적게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와 ‘그 선택이 정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까지 함께 측정한다.

MQQS는 총 11개 문항으로 구성되며 두 가지 핵심 차원으로 조용한 사직을 설명한다. 첫 번째는 ‘행동적 조용한 사직(Behavioral Quiet Quitting)’이다. 이는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한다’ ‘승진에 도움이 되더라도 추가 업무는 하지 않는다’ ‘나는 직장에서 잘리지 않을 정도로, 요청받은 만큼만 일한다’ 등 실제 업무에서 보이는 제한적 행동 패턴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정서적 조용한 사직(Emotional Quiet Quitting)’으로 ‘나는 직장에서 마치지 못한 일이 남아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주어진 일 이상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추가 업무를 회피함으로써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다’라고 느끼는 감정적 태도를 나타낸다. 즉 이 척도는 조용한 사직을 외형적 행동만이 아니라 그러한 행동에 대한 내적 정당화와 심리적 평정까지 아우르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설명한다.

‘조용한 사직’ 현상의 핵심은 분명하다. ‘잘리지 않을 만큼만 일하겠다’라는 의지의 천명이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같은 월급 받고 일 적게 하는 사람이 위너(winner)’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조용한 사직’을 부끄러운 태도로 바라보지 않으며 합리적이고 정당한 전략이라고 바라보는 태도가 더 주목받는 듯하다.


직원의 게으름이 문제?
핵심은 ‘주인 의식’의 실종

많은 회사의 경영진과 관리자는 당연히 ‘조용한 사직’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책임감도 없고 주인 의식도 없는 요즘 애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게으르고 이기적인 요즘 아이들을 보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혹은 “요즘은 조직을 위해서 희생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어”라고 말하는 관리자가 많다. 그런데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정말로 ‘조용한 사직’은 단지 책임감 없는 개인의 문제일 뿐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먼저 ‘조용한 사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졸업생 한 명을 만났다. 공기업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인사를 건넸더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말했다. “사노비에서 공노비로 바뀐 것뿐이에요. 직장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그냥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거죠. 뭐.” 순간 웃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모를 씁쓸함이 스쳤다. 조선 시대의 사노비와 공노비처럼 그는 자신이 조직 일부로 등록됐을 뿐 진정한 주체로서 존중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중세 로마 시대의 종, 조선 후기의 신분제 아래 있던 노비처럼 오늘날의 많은 직장인도 조직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말없이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존재’로 한정 짓고 있다. 그냥 조직의 부속품인 것이다. 이들은 업무를 수행하되 별다른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다. 일은 하지만 마음은 철수한 상태다. 그 말 한마디 속에는 더 이상 조직에 기대도 없고, 나를 봐 달라는 외침도 없으며, ‘그저 내 역할만 할 테니 그 이상은 바라지 말라’는 차가운 거리 두기가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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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씁쓸한 감정은 일상에서도 자주 떠오른다. 동네 병원이나 식당을 다니다 보면 늘 같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장사가 잘 안 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주인이나 원장이 불친절하다. 본인이 사장이라면 누구보다 더 친절하고 적극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만약 직원이 그랬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단지 월급을 받고 맡은 시간만 채우면 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은 다르다. 자기 돈을 투자하고, 자기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사람 아닌가. 사업의 성패에 따라서 생존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친절하지 않다면 정말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정신적 태도가 4차원적인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가게에서 누가 주인인지는 의외로 쉽게 드러난다. 손님에게 친절하고 책임감 있게 응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주인일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무심하게 일하고 건성으로 응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는 직원이다.

여기에 ‘조용한 사직’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조용한 사직은 바로 이 주인과 직원의 근본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직원은 주인이 아니다. 따라서 주인이 직원에게 주인 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아무리 조직문화나 리더십 교육을 강조해도 권한과 책임을 주지 않는 한 직원은 자신을 단지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니 맡은 일만 최소한으로 해내고 그 이상은 감정적으로 철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해도 훌륭한 직원이고, 안 잘릴 만큼만 일하는 것도 특별히 비난할 수는 없다. 결국 ‘조용한 사직’은 나태나 무관심의 결과가 아니라 ‘나는 주인이 아니다’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용한 사직’이라는 태도가 등장한다. 일에 몰입하지 않는 직원을 비난하기 전에 그들이 왜 스스로를 조직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주어진 일만 수행하고 더 이상의 정서적 투자를 거둬들이는 선택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반복된 경험에서 비롯된 심리적 결론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도 조직은 변하지 않는다’는 학습, ‘내 자리는 언제든 대체 가능하다’는 인식은 직원의 마음을 서서히 닫게 만든다. 부속품처럼 쉽게 교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자신의 에너지를 더 이상 무의미한 곳에 쓰지 않는다. 감정을 철수하고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는 것은 나태나 냉소 때문이 아니라 소모를 줄이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다. 이는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무리하지 않겠다’는 이성적 선택이자 불필요한 상처를 피하려는 정서적 안전장치다.

이처럼 ‘조용한 사직’은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을 그러한 선택으로 이끄는 구조적 조건의 산물이다. 직원은 ‘주인’이 아니다. 노동의 대가로 월급을 받고 정해진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뿐이다. 소유권, 의사결정권, 장기적인 성장 경로, 공정한 보상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주인 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조직에서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헌신에 대한 인정이 불투명하며,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 때 사람은 필연적으로 정서적 거리를 둔다. 회사가 나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않을 것이고 금세 다른 인력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현실 인식은 이를 더욱 강화한다. 따라서 감정을 접고, 지시에만 반응하며, ‘계약서에 명시된 만큼’만 일하는 것은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 된다. 조용한 사직은 냉소가 아니라 권한 없는 자에게 권한 있는 자의 헌신을 요구하는 구조에 대한 침묵의 저항이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체념의 방식이다.


‘주인 의식’ 키우는 조직의 특징

조용한 사직은 단순히 열정이 부족하거나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최근의 실증 연구들은 직원이 스스로 조직을 ‘내 일터’가 아닌 ‘남의 일’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에서 조용한 사직이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조용한 사직은 무기력한 태도의 결과가 아니라 주체로서의 자각이 제거된 상태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거리두기이다. 조직에서 내가 중요한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는 신호를 받지 못할 때 직원은 자연스럽게 감정적으로 철수한다.

인도 경영대학원 아마다바드(IIMA) 연구진의 최신 연구4 는 이런 주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 연구팀은 ‘고성과 인사 시스템(High-Performance Work Systems, HPWS)’이 조용한 사직을 줄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HPWS는 조직 내에서 인재 선발, 교육훈련, 평가, 보상, 승진, 의사소통 등의 여러 제도를 체계적으로 통합해 직원에게 심리적 자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중에서도 ‘조용한 사직’과 관련해서 특히 주목해서 볼 요소는 자율성, 참여적 의사결정, 성과 기반의 공정한 평가 및 보상이다. 이 세 가지는 단순한 제도적 구성 요소가 아니라 직원이 자기 일을 ‘내 일’로 인식하게 만드는 주인 의식의 핵심 조건이다.

첫째, 자율성은 직원이 자신의 업무 수행 방식이나 진행 속도, 우선순위를 어느 정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감각을 의미한다. 조직이 자율성을 허용하지 않고 일방적 지시나 미시적 통제를 지속할 경우 직원은 자신의 역량을 활용하고 책임지기보다는 최소한의 요구만 충족시키려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반대로 자율성이 보장되면 직원은 자기 일이 조직의 성과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가지며 더 적극적으로 자기 일에 관여하게 된다.

둘째, 참여적 의사결정은 직원이 자신과 관련된 사안이나 팀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그것이 실제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경험을 의미한다. 많은 조직이 형식적으로는 의견을 묻지만 실질적으로는 위에서 이미 결정한 내용을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직원이 조직의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 수용자로 전락하게 되고 자신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는 학습이 반복된다. 참여적 구조는 단순히 민주적 절차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의 ‘소속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자극하는 강력한 심리적 기제다.

셋째, 성과 기반의 공정한 평가와 보상은 직원의 동기를 유지하는 가장 실질적인 구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성과급이 있다’라는 형식이 아니라 노력과 결과의 연결이 명확하다는 믿음이 조직 내에서 작동하고 있는가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거나 불투명한 기준으로 보상이 이뤄질 경우 직원은 자신이 조직에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잃게 된다. 이는 조용한 사직으로 이어지는 가장 빠른 경로다. 공정한 보상은 단지 금전적 혜택이 아니라 조직이 나의 노력을 진지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존재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율성, 참여적 의사결정,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제대로 갖춰질 때 직원은 자신의 일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을 심리적 의미감(psychological meaningfulness)이라 하며 이것이 바로 HPWS가 조용한 사직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이유다. 더 나아가 직원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내적 확신과 정서적 여유를 갖게 되는데 이를 심리적 가용성(psychological availability)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 심리 자원이 확보될 때 직원은 조직에 더 깊이 몰입하고 헌신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자율성과 참여, 공정한 보상이 직원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느끼게 만들고 이러한 인식이 조용한 사직의 가능성을 낮춘다는 것이다.

조용한 사직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직원이 더 이상 조직을 ‘내 일터’로 느끼지 못하는 구조적 결과다. 앞선 연구에서도 강조했듯 주인의식은 무에서 생기지 않는다. ‘내가 이 일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책임감과 헌신을 발휘하게 된다. 최근 발표된 미국 스티븐스공대 연구진의 연구5 역시 조용한 사직이 지각된 통제감(perceived control)이 낮은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 통제감은 ‘내가 이 일을 잘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는 기본적인 인과에 대한 믿음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직원이 열심히 일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인사는 운이나 상사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고 느낀다면 그는 점점 ‘내가 뭘 해도 소용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대로 ‘내가 노력하면 보상이 따른다’라는 확신이 있을 때 직원은 자연스럽게 더 책임감 있게 일에 임하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위(locus of control)라고 부른다. ‘일의 결과는 내 노력에 달려 있다’라고 믿는 사람은 내재적 통제위(internal locus), ‘운, 타이밍, 상사의 눈치가 더 중요하다’라고 믿는 사람은 외재적 통제위(external locus)에 가깝다. 중요한 건 이런 믿음은 개인 성향이라기보다 조직문화와 리더십에 따라 충분히 만들어지고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많은 조직에서 직원이 느끼는 통제위는 외재적 통제위에 가깝다. 노력과 성과의 연결고리가 희미하고, 평가와 보상이 예측 불가능하며, 결정권이 상층부에만 집중돼 있을 때 직원은 자기 영향력이 거의 없다고 느낀다. 이런 환경이 지속되면 주인의식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계약된 만큼만 일하겠다’라는 조용한 사직의 태도뿐이다.

앞서 소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통제감이 낮은 직원일수록 ‘나는 조직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내가 아니어도 이 일은 돌아간다’라는 대체 가능성(replaceability)을 크게 느끼며 동시에 ‘이 조직에 정 붙일 이유가 없다’라는 정서적 거리감(affective detachment)을 갖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조용히 계약서에 적힌 일만 하겠다’라는 선택은 이성적인 자기 보호 전략이다. 결국 조용한 사직은 상벌 제도나 동기부여 프로그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직원이 ‘이 일은 나의 일이다’ ‘이 자리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감각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앞서 말했듯 주인의식은 결과가 아니라 경험의 축적에서 생긴다. ‘위에서 다 정했어’ ‘그건 네가 뭘 해도 소용없어’라는 환경이 반복되면 결국 사람은 책임이 아니라 거리두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조용한 사직’으로 연결된다.


‘조용한 사직’의 비용

그러나 구조가 문제라고 해서 조용한 사직이 개인에게 아무런 대가 없는 선택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조용한 사직을 택한 직원 본인은 심리적·정서적 측면에서 매우 치명적인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 그 이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일터에서 보낸다. 그런데 그 시간이 고통스럽고 의미 없으며 무기력하다면 인생의 절반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일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이 이런 마음과 태도로 하루를 버틴다. 그렇게 조용한 사직을 한 사람은 ‘출근은 생존, 퇴근은 해방’이라는 공식 속에 갇혀 살아가게 된다.

업무는 단지 견디는 대상이 되고 자신을 스스로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버티는 노동력’으로 인식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일에서 의미나 성취감을 얻지 못하면서 다른 삶의 영역에서도 활력을 잃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질 때 사람은 서서히 소진되고 침묵 속에서 퇴행한다. 그렇게 조용히 감정이 닫히고, 의욕이 사라지며, 자아는 마모된다. 일이라는 행위가 가진 본래의 힘—존재의 이유, 자율성, 기여감, 성장—이 모두 사라진다.

이 현상은 회사에도 절대 가볍지 않은 손실로 돌아온다. 2022년 발표된 갤럽 보고서에 따르면 조용한 사직자 비율이 높을수록 이직률이 증가하고, 고객 만족도와 생산성이 낮아지며, 수익성까지 감소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는 단순히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심리적 철수로 인한 조직의 에너지 손실 때문이다. 조용한 사직은 감정의 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실적과 비용의 문제다. 일에 몰입하지 않는 직원이 많아질수록 조직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거나 더 강한 통제를 가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조직 전체의 효율이 떨어지고 분위기 역시 냉각된다.

심리적 거리 두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동료 간의 신뢰, 상사와의 소통, 고객 응대의 질까지 조용히 파고든다. 문제는 전염성이다. 한두 명의 조용한 사직이 주변 직원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무기력한 분위기를 조직 전체로 확산시킬 수 있다. 결국 조용한 사직은 직원 개인의 선택 같지만 사실은 조직의 성과와 문화를 무너뜨리는 집단적 침묵의 연쇄 작용으로 이어진다.


조용한 사직이 세대 초월 확산되는
‘시끄러운 사직’을 막으려면

이런 현상은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20·30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40대와 50대 직장인들 역시 상당수가 비슷한 태도로 일하며 월급을 받기 위해서만 출근하고 그 외의 의미나 소명을 찾지 않는다. 안 잘릴 정도만 버티는 것이 목표가 된 사람도 많다. 다만 최근 20·30대에서 이런 태도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향후 변화의 방향을 시사한다.

과거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시대와 달리 이 세대는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선택한다. 이미 이들이 노동시장에 대거 진입해 있고 앞으로 비중이 더 커질수록 조용한 사직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일터 문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조용한 사직’이라는 이름처럼 비교적 수동적이고 침묵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머지않아 더 적극적이고 가시적인 형태의 ‘시끄러운 사직’이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다. 이는 조직이 구조와 문화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지 않는 한 피하기 어려운 미래다.

관리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열정이나 헌신을 요구하기 전에 직원이 자신을 조직의 일원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책임감은 권한이 있을 때 생기고, 헌신은 인정받는다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직원이 ‘내가 하는 일이 이 조직에 진짜로 의미가 있다’라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직원이 자율성을 체감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예컨대 팀별 목표 설정에 직원이 직접 참여하게 하거나 업무 수행 방식과 순서를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재량을 부여하는 것이다. 매뉴얼을 따라야 하는 일이라도 ‘이 과정을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여지를 주면 직원은 단순한 실행자가 아니라 개선의 주체로 기능하게 된다. 프로젝트를 조직의 목표가 아닌 내가 책임지는 프로젝트로 느낄 때 직원은 더 이상 타인의 일이 아닌 ‘내 일’을 하게 된다.

둘째, 조직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실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많은 기업이 형식적인 설문조사나 피드백 창구를 운영하지만 실질적인 피드백 반영률이 낮아 직원의 피로감만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작은 안건이라도 구성원의 의견이 실제로 반영되는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사내 복지 제도나 회식 방식, 팀워크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 선정 등에 직원 참여를 유도하고 그 결과를 빠르게 실행에 옮기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내 의견이 통한다’라는 경험을 통해 직원의 정서적 소속감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주인의식을 형성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셋째, 노력과 보상 간의 연결고리를 명확히 해야 한다. 단순히 인센티브 제도를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기준이 투명하고, 예측할 수 있으며,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보상의 크기가 아니라 그 구조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다. 이를 위해 성과평가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평가 과정과 결과를 구성원과 공유하며, 피드백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특히 평가 결과가 개인의 실제 성과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명확히 설명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히면 직원들은 ‘내가 노력한 만큼 인정받는다’라는 확신을 하게 되고 이는 조용한 사직을 예방하는 강력한 심리적 장치가 된다.

이 모든 전략은 한 가지 공통된 목적을 향해 있다. 직원이 자신의 역할과 기여를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직원에게 ‘나는 이 조직에서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감각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거창한 프로그램이나 캠페인이 아니라 권한과 책임이 연결된 경험, 그 경험이 쌓여서 생기는 통제감의 회복이다. 결국 조용한 사직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며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사람은 자기가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세계에만 마음을 담는다. 그리고 그 믿음을 설계하는 것은 바로 관리자, 리더들의 몫이다.
  • 김영훈younghoonkim@yonsei.ac.kr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필자는 사회심리학자이자 문화심리학자이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에서 학사, 아이오와대에서 석사, 일리노이대에서 사회심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2013년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특훈교수’에 선정 및 임명됐고 2015년 아시아사회심리학회에서 ‘최고의 논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 걸 그랬습니다』 『노력의 배신』 『함부로 칭찬하지 마라』가 있다. 삼성, LG, 사법연수원, 초·중·고등학교 학부모 연수 등 각종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칭찬과 꾸중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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