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sed on “Trading with the Enemy: A Coopetitive Perspective of Resource Exchange at Arm’s Length” (2026) by Zhefei Li, David Gomulya, and Heli Wang in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Vol. 47, Issue 1, January 2026, pp. 293-325.
삼성전자와 애플, 소니와 니콘. 이렇게 완제품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업체들이 생산 단계에선 핵심 부품이나 기술을 거래한다는 건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얽히고설킨 오늘날, 경쟁과 협력이 교차하는 ‘코피티션(Coope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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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이미 경영의 상수다. 다만 중요한 것은 거래의 타이밍과 조건이다. ‘적과 거래할 것인가’가 아니라 도대체 ‘언제 어떤 조건에서’ 팔아야 내 살을 깎아 먹지 않고 이득을 보느냐가 문제다.
싱가포르경영대(SMU) 연구진은 이 질문에 대해 먼저 수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 막연한 제휴가 아니라 경쟁사 사이에서 돈을 주고 핵심 자원을 사고파는 ‘시장 거래(Arm’s leng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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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모델링하고 핵심 자원을 팔아야만 하는 ‘전략적 균형점’을 규명하고자 했다.
연구진은 먼저 게임 이론에 기반한 수리 모델을 통해 거래가 기업 가치에 미치는 두 개의 상충하는 힘을 함수화했다. 첫째는 업스트림 이득(Upstream Gain)이다. 이는 핵심 자원을 판매해 얻는 마진이다. 둘째는 다운스트림 손실(Downstream Pain)이다. 경쟁사의 완제품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내가 잃게 되는 시장점유율, 즉 자기 잠식(Cannibalization) 비용이다.
내시 균형을 적용해 가격 결정력을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업스트림 역량의 비대칭성이 거래 성사의 핵심 변수임을 증명했다. 핵심 자원을 판매하려면 단순히 나의 기술이 좋은 것을 넘어 경쟁사가 선택 가능한 차선책과의 격차가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내 기술 우위가 애매할 경우 경쟁사에 받을 수 있는 가격 프리미엄은 낮고 내 점유율 하락폭은 크다. 이 구간은 거래가 불가능한 ‘죽음의 계곡’이다. 반면 내 기술이 압도적일 경우 경쟁사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내 부품을 쓰려고 한다. 이때 부품 마진 곡선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시장 잠식 비용 곡선을 뚫고 올라가는 ‘이익 역전(Golden Cross)’ 구간이 발생한다. 내 기술이 시장에서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이 되는 것은 덤이다. 이론적으로 적과의 거래는 이 지점에서만 최적의 전략이 된다.연구진은 수학적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미국 프로농구(NBA)의 20년간(1996~2016년) 선수 트레이드 데이터를 분석했다. 프로 스포츠는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제로섬 게임’이며 선수라는 핵심 자원의 가치를 이적료와 연봉, 성적 등으로 정량화할 수 있는 좋은 실험실이다.
연구 결과, 일반적으로 라이벌 관계(경쟁 강도)가 치열할수록 핵심 선수의 트레이드 성사 확률은 뚜렷하게 낮아졌다. 두 팀이 동일한 지구(디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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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속해 경쟁 압력이 가장 높은 경우 그렇지 않은 팀들에 비해 거래 발생 확률이 약 30~40% 감소했다. 상대가 내 선수를 데려가 전력을 강화하고 나를 이기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다. 하지만 이득이 손실을 상쇄하는 전략적 구간 또한 확인됐다. 트레이드 대상 선수의 가치가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높거나(압도적 우위) 받아오는 대가가 상대 팀의 전력 강화 리스크를 압도할 때는 거래가 성사됐다. 예컨대 라이벌에게 주전 선수를 내주더라도 그 대가로 받는 유망주나 드래프트 지명권의 가치가 당장의 위협을 감수할 만큼 클 때는 거래가 이뤄졌다. 이 팀들은 막연한 라이벌 의식 때문에 무조건 거래를 거부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계산기를 두들겨 ‘순이익(Net Gain)’이 남는 구간에서만 움직였다. 여기엔 의미 있게 작용하는 또 하나의 변수도 있었다. 과거 거래 경험, 즉 신뢰다. 과거에 트레이드를 한 번이라도 했던 팀끼리는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도 거래 확률이 다시 올라갔다. 오랜 기간 쌓은 ‘신뢰 자본’이 핵심 자원 거래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연구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어설픈 기술 격차만으로 적과 손잡아선 안 된다. 그러나 내 기술이 대체 불가능하다면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공급해 경쟁사를 내 기술 생태계에 종속시키는 전략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기술 격차가 압도적이라면 경쟁사가 완제품을 많이 팔수록 내 수익도 비례해서 늘어난다. 이는 경쟁사를 사실상 나의 협력업체나 유통 채널화하는 고도의 레버리지(Leverage) 전략이다.
겉으로는 시장을 잠식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이 영업을 할 때마다 나에게 막대한 로열티를 선사하는 구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때 경쟁자는 더이상 당신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당신의 기술 표준을 전파하는 가장 충실한 ‘세일즈 파트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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