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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AI 골드러시, ‘곡괭이와 삽’을 찾아라

김현진 | 442호 (2026년 6월 Issue 1)
‘로봇(robot)’이라는 단어는 체코어 ‘로보타(robota)’, 곧 ‘고된 노동’에서 비롯됐습니다. 1920년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R.U.R.』을 통해 처음 세상에 나온 이 단어는 ‘인간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존재’를 가리켰습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차페크가 상상했던 질문을 현실 속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로봇에 과연 어떤 노동을 기대하는가.

올해 4월 베이징의 한 공원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하프 마라톤을 50분26초에 완주했습니다. 인간 세계 기록보다 7분 가까이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휴머노이드들이 교대로 150시간 넘게 쉬지 않고 택배를 분류했고, 3세대 휴머노이드 ‘피규어 03’은 옷을 개고 식기를 정리하는 일상의 장면을 선보였습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라는 헤드라인이 언론을 뒤덮었지만 엄밀히 보면 지금의 휴머노이드 산업은 본격적인 생산성 경쟁보다 기대 가치를 앞세운 쇼케이스 경쟁에 가깝습니다.

현재 기업들이 공개하는 시연의 상당수는 정해진 동작밖에 수행하지 못하는 ‘따라쟁이 AI’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김상배 MIT 기계공학과 교수는 여기서 현실적인 돌파구를 제시합니다. 19세기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진짜 승자는 금을 캐러 간 광부가 아니라 작업복인 청바지를 팔았던 리바이스와 채굴 도구인 곡괭이와 삽을 판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로봇 산업에서도 휴머노이드 완제품보다 로봇 생태계에 부품과 도구를 공급하는 ‘곡괭이와 삽 비즈니스’가 훨씬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곡괭이와 삽’은 추론형 반도체, 센서, 액추에이터, 배터리, 시뮬레이션 플랫폼처럼 로봇의 움직임과 판단, 학습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입니다.

지난해 전 세계에 출하된 휴머노이드의 80% 이상은 중국 기업 제품이었습니다. 완제품 시장에서 중국의 속도가 이처럼 빠르다고 해서 모든 영역의 주도권까지 이미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중국이 보안 이슈와 지정학적 리스크로 미국·유럽 진출에 제약을 받는 지금, 신뢰할 수 있는 대안과 공급망 다변화를 찾으려는 수요는 오히려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부품과 운영 인프라 등 신뢰성이 핵심 경쟁력이 되는 영역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플레이어가 주도권을 확보할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정밀 기계에 이르기까지 피지컬 AI의 핵심 가치사슬을 국내에서 완결할 수 있는,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중견 기업의 국내 스마트공장 도입률은 아직 20%에 미치지 못하고, 행동 데이터 인프라는 초기 단계입니다. 2032년까지 최대 89만여 명의 제조업 인력 부족이 예상되는 지금, 피지컬 AI 도입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피지컬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에 투자와 개발 역량, 대중의 관심이 모두 집중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로봇이 인간을 얼마나 닮았는지 그 자체가 아닙니다. 외형에 집착하지 말고 기능과 목적에 충실할 수 있는 로봇을 상용화해 빠르게 수익화해야 합니다. 각 동작의 난이도를 정량화하고 ROI를 기준으로 도입 순서를 설계하는 치밀한 능력과 더 작게, 더 싸게, 제품을 극한까지 다듬어온 한국 제조업의 DNA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합니다.

DBR은 이번 호에서 제조 현장을 넘어 일상과 서비스 공간으로 확장되는 피지컬 AI의 현실을 추적했습니다. AI 골드러시의 한복판에서, 이번 리포트가 각 기업이 자신만의 곡괭이와 삽을 찾는 데 실질적인 가이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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