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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암의 정원 읽기

3代가 일군 정원, CEO의 우뇌를 일깨우다

신현암,정리=백상경 | 437호 (2026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일본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 ‘네즈 미술관’은 특별한 정원을 품고 있다. 도심의 번잡함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자연의 정취를 간직한 곳이다. 이 정원은 3대에 걸친 네즈 가문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성공한 기업가로서 자신의 교양적 사고를 키우고 문화에 기여하고자 한 1대, 선친의 유지를 이어 미술관을 창립하고 공공 자산으로 전환한 2대, 소장품 매각이라는 결단까지 내리며 건축, 정원 조성, 심지어 로고 디자인까지 ‘최고의 인재’를 모아 2009년 재개관을 이끈 3대까지. 세대를 이은 판단과 선택의 결과, 예술과 자연을 하나로 어울리게 하고 도시와 구분 지음으로써 CEO의 우뇌를 일깨울 특별한 정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편집자주 | 신현암 대표가 세계 주요 국가의 명문 정원을 역사·문화적 맥락에서 조명하고 그 속에 담긴 통찰을 현대 경영자에게 전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미학을 통해 새로운 영감과 시사점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일본 도쿄 아오야마에 위치한 네즈 미술관은 일본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이다. 7점의 국보를 포함해 약 7000점의 고미술품을 소장했으며 일본 미술사를 상징하는 깊이 있는 컬렉션,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한 특별한 건물과 공간 구성이 특히 유명하다.

네즈 미술관은 자연의 정취를 간직한 특별한 정원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다른 건물의 정원처럼 단순한 부속 공간이 아니다. 예술과 자연을 한 덩어리의 경험으로 묶어내는 또 하나의 핵심 공간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깊은 산중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풍경은 이곳을 만든 네즈 가문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필자는 정원을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설계하고 가꾼 ‘만든 사람’의 관점에서 읽어보려 한다. 1대 네즈 가이치로와 그의 아들, 손자인 네즈 고이치가 왜 정원을 만들었고, 어떤 도전과 응전을 거쳐 2009년 재개관까지 이르렀는지를 따라가 보려 한다.


고미술품 수집에 전념한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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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일본 재계는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를 단장으로 미국의 주요 도시를 3개월간 순방하는 ‘도미실업단(渡米実業団)’을 구성했다. 이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막 떠오르고 있는 미국의 주요 도시를 방문하며 경제인과 교분을 쌓았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태프트, 발명왕 에디슨 등과 면담하는 기회도 있었다.

경영난에 빠졌던 도부철도를 성공적으로 재건시켜 ‘동쪽의 철도왕’이란 칭호를 얻었던 네즈 가이치로(根津嘉一郎)도 일행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특히 ‘석유왕’ 록펠러를 만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대단하다. 어느 도시를 가도 사람들은 다들 자기 고장을 자랑하는데 그 지역의 부자들은 기부를 해서 학교나 미술관을 만든다. 정말로 공공을 위해 돈 쓰는 걸 아끼지 않는다. 록펠러 씨도 거액을 기부해 미술관을 세웠고 미술관에 전시하기 위해 미술품을 수집하고 있다.…”

당시 네즈 가이치로의 나이는 49세. 자기보다 스무 살 많은 록펠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고미술품 수집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일본 미술품이 해외에서 헐값에 팔리는 것을 보고는 필사적으로 사들였다. 네즈 미술관이 국보 7점을 비롯해 7000여 점의 일본 및 동양의 고미술품을 보유하게 된 출발점은 네즈 가이치로의 미국 방문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네즈 미술관이 있는 곳은 1906년 가이치로가 구입한 저택이었다. 이곳은 에도시대 때 다이묘(大名)의 도쿄 거처로 사용한 곳인데 부지의 굴곡이 특히 가이치로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이곳에 깊은 산골짜기 같은 운치가 느껴지는 정원을 조성하고 시골집풍의 건물과 다실을 배치했다. 1913년에는 그 성과를 세상에 보여주고자 ‘정원 강평회(庭園講評会)’를 열었다. 당시 일본의 부자 사이엔 다도(茶道)가 유행이었다. 제대로 된 부자라면 교양까지 갖춰야 했는데 특히 다도를 제대로 알아야 했다. 일본 다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다도와 다실, 정원은 한 묶음이다. 그는 그만큼 정원에도 진심이었다. 가이치로에게 정원은 ‘부지의 굴곡’에서 출발해 컬렉션과 다도를 담아내는 ‘삶의 무대’였다.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미술관을 건립한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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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가이치로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저택을 미술관으로 남겨달라는 유언을 했다. 막상 미술관으로 바꾸려 하니 상속세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네즈 관계자는 훗날 일본 총리가 되는 이케타 하야토(池田勇人) 재무성 조세 과장과 상의했다. 상속 재산에 세금을 매겼다가는 납세를 위해 수집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컬렉션이 흩어짐은 물론 해외 반출도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공익법인에 기부하면 그만큼은 상속세 과세 대상으로 보지 않는 특례’가 있었다. 네즈 일가는 ‘재단법인 네즈미술관’을 만들고 곧이어 1941년 미술관을 개관함으로써 상속세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 그의 컬렉션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특례를 인정하는 세법 덕분이었다. 2대에게 정원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선친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 ‘공공 자산’으로 전환해야 하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2차 대전 폭격의 피해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소장품은 다른 곳에 미리 대피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래도 미술관 건물은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 새로 건물을 지으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턱없이 부족했다. 부지의 절반을 팔아 건물을 새로 지었다. 1954년의 일이다.


미술관 재개장의 필요성을 느낀 3대

시간이 흘러 2000년, 가이치로의 손자인 네즈 고이치(根津公一)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학예사들은 “수장고(蔵, 쿠라) 지붕 기와가 부서져 비가 새고, 곰팡이가 생기며, 소장품 수에 비해 너무 좁다. 어떻게든 해달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고이치는 ‘장래 구상위원회’를 만들어 약 2년간 네즈 미술관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해 연구하도록 했다. 기존 3개의 수장고와 본관을 철거하고 새로운 본관을 지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1954년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는 부지를 팔았다. 더 이상은 팔 부지가 없다. 고이치는 소장품을 팔기로 했다. 실제 미국과 유럽에선 소장품을 팔아 그 돈으로 컬렉션을 강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네즈 미술관은 청나라 때 괘종시계를 20개 보유하고 있었다. 5개를 남기고 나머지를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았다. 예상보다 비싼 가격을 받은 덕에 재개관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1


구마 겐고와의 협업

고이치는 미술관 재건축의 적임자로 구마 겐고(隈研吾)를 꼽았다. 구마는 이미 네즈 가문의 가루이자와에 여름 별장을 설계한 경험이 있다. 고이치 입장에서 네즈 미술관 재건축은 ‘할아버지의 유지를 실행하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였다. 인지도만 믿고 맡길 수는 없었다. 이미 돈독한 신뢰 관계가 구축된 사람이 필요했고 구마가 적격이었다. 게다가 구마는 나가사키현 미술관, 산토리 미술관 등 미술관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한 경험도 있었다. 안성맞춤이었다.

고이치는 구마, 관련 팀과 함께 전 세계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건물 외관이야 사진으로 대략 알 수 있다. 하지만 내부는 다르다. 빛의 노출에 따라 같은 공간도 어떨 때는 밝게 또 어떨 때는 어둡게 찍히는 사진만으론 한계가 있다. 특히 질감이 어떻게 나오는지는 실물을 봐야만 한다. 그들은 “여긴 좀 너무 어둡다” “이 그릇을 올려둔 케이스 천 색이 너무 밝다” 같은 것까지 세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고이치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구마도 정확히 잡아낼 수 있었다.

구마의 건축 제안도 고이치의 마음을 샀다. 네즈 미술관은 도심 한복판에 있다. 시부야, 하라주쿠만큼의 번잡함은 아니지만 이세이 미야케 점포 7곳을 비롯해 프라다, 콤데가르송 등 유명 패션 브랜드가 가득하다. 이런 번잡함이 인간계라면 미술관은 신이 살고 있는 천상계다. 일본의 모든 신사에는 도리이(鳥居)2 가 있는데 세상의 번잡함은 도리이를 지나면서 떨쳐버리고 신성한 마음으로 신사에 오라는 의미다. 구마는 이러한 중간계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네즈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면 길이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순식간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왼쪽에는 죽은 대나무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고 오른쪽엔 살아 있는 대나무숲(竹林)이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한다. 입구 표지 팻말 뒤편엔 기다란 대나무가 심겨 있다. 색깔이 오묘하다. 황금색 줄기에 초록색 줄무늬가 세로로 들어가 있는 김메이모소치쿠(金明孟宗竹)란 품종이다. 대나무 아래쪽엔 나치구로(那智黒) 돌이 길을 따라 놓여 있다. 이 돌이 얼마나 고급스럽냐 하면 “최고급 바둑돌을 만들 때 흰 돌은 대합조개 껍데기를, 검은 돌은 나치구로 돌을 쓴다”는 표현이면 충분할 듯하다. 대나무 사이 길을 걸으면서 방문객은 동네의 부티크와 저택들로부터 분리된, 또 다른 세계에 들어온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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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다른 네즈 정원의 아름다움

정원의 4계절은 모두 특색이 있지만 네즈 정원이 가장 멋질 때는 4월 말~5월 초다. 이 무렵 정원의 작은 호수는 강력한 보랏빛을 내뿜는 제비붓꽃으로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탄식과 함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린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 중에는 이젤을 펴고 그림을 그리는 분도 계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오가타 고린(尾形光琳)이 그린 연자화도(燕子花図)도 전시된다. 네즈 미술관엔 총 7개의 국보가 있는데 이 그림이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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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술사를 공부하면 린파(琳派)라는 계보가 나온다. 오가타 고린의 마지막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이 꽃이 피는 시기에 네즈 미술관은 그의 대표작 중 연자화도를 전시하면서 야간 개장도 한다.

11월 말~12월 초도 좋은 계절이다. 이 시기에 가끔 서울에선 첫눈이 오기도 하지만 도쿄는 단풍이 절정이다. 꽃단풍을 비롯해 울긋불긋한 색감의 향연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네즈 정원은 깔때기 모양을 하고 있다. 본관에서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고도가 낮아진다. 그래서 깊숙이 들어가면 도심이 아닌 숲속에 있는 느낌이 든다. 중심부에는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 주변에 4개의 다실이 있다. 가이치로는 이 다실로 사람을 초대해서 다도를 즐겼다. 재개관을 위해선 다실 및 그 주변도 새롭게 손봐야 했다. 고이치는 가자마 소케이(風間宗景)에게 이 일을 맡겼다. 가자마 소케이는 그의 부친 가자마 소큐(風間宗丘)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작정가(作庭家)로 불린다.

특히 ‘다실이 붙어 있는 정원’에 관한 한 현역 중에선 최고봉으로 손꼽힌다. 1954년 고이치의 아버지가 미술관을 새로 개관할 때도 소케이의 아버지, 즉 소큐가 정원을 꾸몄다. 부친 세대 때 함께했던 작업을 아들 세대에서 똑같이 물려받은 셈이다. 고이치에게 정원은 ‘미술관의 부속물’이 아니라 미술관 경험의 핵심을 이루는 또 하나의 본관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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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로고를 만든 피터 슈밋

어느 공간을 가든 그곳을 상징하는 로고 마크가 있다. 최근 광고업계 관계자들과 네즈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일행이 “저 로고 마크는 꼭 대나무처럼 보이네. 우리 입구에 보면 양쪽에 대나무가 쭉 늘어서 있잖아. 그걸 묘사한 것 아닐까?”는 의견을 밝혔다. 그런 시각으로 보니 그렇게 보였다. 좀 더 찾아보니 기본 콘셉트는 네즈 미술관의 영문 이니셜 ‘N’과 ‘M’을 기하학적으로 조합해 만들었다고 한다. 앞서 설명한 오가타 고린의 연자화도 병풍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미술관의 랜드마크인 옥외 정원과 주변의 대나무를 형상화하기도 했다.

이 로고는 독일의 디자이너 피터 슈밋이 만들었다. 질 샌더, 휴고 보스, 니베아, 아이그너, 다비도프, 크롬바커 등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레드닷의 로고도 그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재개관은 건물과 정원만이 아니라 네즈 미술관이 어떤 장소인지 다시 선언하는 일이기도 했다. 건축, 정원 조성, 심지어 로고 디자인까지 최정상급 인재를 불러 모은 이유다. 그 정성이 모인 만큼 멋들어진 공간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


CEO 사고의 균형 잡아주는 공간, 정원

네즈 고이치는 “일본 문화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정원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알아보죠”라고 말했다. 어디 일본뿐이랴. 어느 나라건 문화를 이해하려면 엄청난 배경지식이 요구된다. 하지만 정원은 그냥 가서 즐기기만 하면 된다. 촉각이라는 감정이 손끝으로만 느끼는 줄 알았는데 내 뺨을 스쳐 지나가는 부드러운 바람도 촉각의 한 종류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가슴속부터 행복감이 밀려 올라온다. 지적 욕구 충족을 위해 서재를 만들고, 정서적 욕구 충족을 위해 정원을 가꾸는 것은 동서양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CEO라면 정원이라는 공간은 좀 더 가까이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전략에만 몰두하면 좌뇌만 발달한다. 뇌의 균형을 위해서는 우뇌도 발달시켜야 한다. 네즈 미술관의 동선은 도리이처럼 ‘경계’를 지나게 하고, 깔때기 지형은 걸음을 옮길수록 ‘깊이’를 더하며, 계절과 전시의 리듬은 ‘시간’을 의식하게 만든다. 2017년 최고의 경영 구루에 오른 로저 마틴은 그의 책 『디자인 씽킹 바이블(원제: The Design of Business)』에서 “분석적 사고에 기반을 둔 숙련과 직관적 독창성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균형을 이루는 것”을 ‘디자인싱킹’이라 명명했다. 정원은 분석적 사고에만 치우쳐 생각하는 CEO에게 균형 잡힌 사고를 하도록 도와주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균형은 더 나은 의사결정을 이끌어 내는 원동력일 수 있다.
  • 신현암

    신현암gowmi123@gmail.com

    팩토리8연구소 대표

    신현암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경영학)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 등을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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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백상경baek@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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